할아버지 회고록 32
이 글은 저의 할아버지가 1931년 일본에서 태어나시어 한국으로 귀국 후 약 70년간 겪어오신 삶이 담긴 회고록을 바탕으로 작성된 글로 실제 이야기입니다.
그 무렵 제대가 처음 시작됐다. 휴전이 되어 전투손실은 없고 계속입대는 하고해서 병력을 감축시키기 위해 실시된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한 방법으로 제대를 시키고 있다. 계급별 선임순이란다. 나는 53년 9월 1일부로 일등중사가 되었으니 같은 계급에 선임들이 많았다. 일등병 선임은 일 년 남짓 군대복무하고 제대하는데 나는 3년이 넘었어도 해당되지 않으니 환장하겠다. 제대해 봤자 별 수없지만 특별한 대우도 없는데 그래도 제대하고 싶었다. 그러나 언제 내 차례가 올지 알 수 없다. 제대병이 걸렸다. 밥도 먹지 않고 굶어버렸다. 1주일 정도가 지나니 힘을 못쓰겠다. 그렇다고 되는 것도 아닌데 때만 되기를 기다릴 수밖에 도리가 없다. 교육은 형식적이지만 매일 반복하곤 했다. 아침식사가 끝나면 강을 건너 설악산 쪽으로 들어가 때가 여름이라 더위를 피해 그늘진 계곡물에 몸을 잠기며 시간을 보낸다. 한 번은 통신대장 김봉거 소위와 정성옥 이성호 그리고 나 네 사람이 골짝깊이 들어가 보았다. 계곡 좌측을 바라보니 높은 데서 내려오는 폭포수가 장관이다. 어데서 어떻게 흘러내려오는가 올라가 보았다. 50m 정도 올라가니 넓다 하게 못처럼 바위가 움푹 파이고 물이 허리깊이만큼 찰 정도였고 약 5m 정도 높이에서 내려오는 폭포가 또 아름답다. 그 물이 떨어지는 곳은 깊다. 마침 그곳에 특무 대서 인정하는 민간사진사가 군인들에게 돈 받고 찍어주기 위해 올라와 있었다. 이곳 내력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는데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서 목욕을 하곤 했단다. 그래서 옥녀탕이라 이름이 지어졌단다. 그리고 폭포수가 떨어지는 곳의 깊이는 명주실 한 꾸리를 다 풀어도 닿지 않을 정도로 깊단다.
물론 가설이겠지만 들여다보니 파랗게 보일뿐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 그곳에서 우리는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곳이 지금은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 후에(89년 여름) 설악산 관광을 위해 인제를 지나 고원통을 지나는데 우리가 애써 지은 막사는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고 연병장으로 닦아놓은 공터만 남아있었다. 옛벗과 옛 곳이 그리워진다. 그해(54년) 가을 애써 지은 막사를 두고 부대이동을 하게 됐다. 동부전선 최동단 최전방부대로 간다. 우리 부대는 전투 시에는 중부와 중동부전선에서만 근무했고 동부전선은 처음이다. 대대 OP는 건봉산에 그리고 CP는 건봉사가 있는 곳에 주둔했다. OP건봉산에 올라가 보면 멀리 금강산이 아스라하게 바라보이고 동해 쪽으로는 간성과 거진 앞바다가 훤히 보인다. 고지내무반에서 아침바다를 바라보면 일출을 볼 수 있다. 그 장엄한 태양이 돋아 오르는 것은 정말 아름답다. 휴전선 넘어 북쪽 학교와 민가의 건물이 보이고 농토도 보인다. 그러나 학교나 민가엔 사람을 볼 수가 없다. 가끔 농부로 보이는 사람들이 삽을 들고 오가는 것이 보일뿐이다. 전시효과를 노리기 위한 전시품에 지나지 않는다. 휴전선이 그어진 골짝에 북쪽으로 흘러가는 남강이 있다. 강이라기보다 하천에 불과하다. 그런데 팔뚝만 한 물고기가 올라온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귀소본능의 연어가 아닌가 한다. 바다 북쪽 해변에 돌로 된 섬들이 보인다. 전쟁 전에 김일성의 별장이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해변 쪽에 철로가 놓아있었는데 동해선 원산으로 가는 철로다. 지금은 남아있는지 철거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CP가 있는 건봉사 부근에는 수복민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농사를 짓고 사는데 들녘이 넓다. 일부농토는 인민군이 매설한 지뢰 때문에 경작하지 못하고 묵혀있다. 풀이 사람키만큼 자랐는데 가끔 지뢰폭발사고가 난다는 것이다. 꿩이 많이 서식하고 있다. CAR총으로 잡기도 한다. 그 부락에 처녀들이 여럿 있었는데 우리 앞에 주둔했던 부대(우리 부대와 맞바꾼 교대부대)가 그냥 두지 않았단다. 그해(54년) 추석 때 농가에서 떡과 술을 빚어 우리에게 청했다. 오랜만에 푸짐하게 얻어먹었다. 거진항에는 어로선이 많다. 해병부대의 통제를 받으며 고기잡이 나간다. 주로 명태(생태)를 많이 잡아오고 문어도 많이 잡힌다. 생태는 한 꾸러미씩 거저 얻기도 한다. 문어는 고가이기 때문에 사서 해 먹는다. 문어 큰 것은 다리가 우리 팔뚝만 하다. 정말 진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