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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스맨’의 아버지, 브라이언 싱어의 당당함

영화 ‘엑스맨 : 아포칼립스’

by 나효진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필모그래피에는 수많은 흥행작들이 존재하지만, 아무래도 그 이름을 언급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엑스맨’ 시리즈입니다. 싱어 감독은 지난 2000년 마블 코믹스의 ‘엑스맨’ 시리즈를 실사 영화로 만든 업적이 있으니까요. ‘엑스맨의 아버지’라는 별칭도 과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총 9편이 나온 ‘엑스맨’ 시리즈 영화에서 싱어 감독은 무려 4편의 연출을 맡았습니다.


그가 ‘엑스맨 : 아포칼립스’(이하 아포칼립스)로 돌아왔습니다. 매튜 본 감독의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로 시작된 프리퀄 트릴로지의 2편과 3편을 연이어 만들게 된 것인데요. 찰스 자비에와 에릭 랜셔가 어떻게 프로페서 X와 매그니토가 됐는지, 그들은 어떻게 오랜 친구이자 적이라는 모순적 관계에 놓이게 됐는지를 설명합니다.


지난 19일, 우리나라에서도 ‘아포칼립스’가 첫 공개됐습니다. 이 영화는 원작의 주제의식인 소수자와의 공존을 이야기의 기본 바탕으로 삼되, 문명의 발달로 거대한 힘을 얻고 난 후 오만해진 인간이 사실은 더 강한 힘 앞에서 너무도 쉽사리 스러지는 나약한 존재였음을 폭로합니다. 프리퀄 트릴로지의 마지막임에도 그다지 좋은 평을 받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봤을 때는 꽤 수작이라고 생각되네요.


이날 브라이언 싱어 감독을 비롯해 극 중 진 그레이 역을 맡은 소피 터너와 퀵실버 역의 에반 피터스가 참석한 라이브 컨퍼런스가 열렸습니다. 화상으로 진행된 기자 간담회에서 인상적이었던 점 중 하나는 싱어 감독의 이유 있는 자신감이었는데요. 미세하게 달라 보이는 오리지널과 프리퀄의 세계관이 관객들에게 혼동을 주지 않겠냐는 질문에 “코믹스나 영화를 본 적 없는 사람도 엑스맨의 형성을 알 수 있도록 만든 영화”라고 말문을 연 그는 “젊은 버전의 엑스맨을 연기하는 배우들에게는 표현의 자유를 주었다”고 답했습니다. 배우들의 해석이 가미된 ‘아포칼립스’가 더 많은 ‘엑스맨’ 시리즈의 신생 팬들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당당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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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 감독은 유독 ‘아포칼립스’에서 사용했던 영화적 기술들을 많이 언급했는데요. 초당 3000프레임을 촬영할 수 있는 팬텀 카메라를 비롯해 최고의 퀄리티를 자랑하는 장비들을 사용했으며 물리적 효과에도 크게 신경을 썼다고 합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 부분은 이 같은 기술의 혜택을 크게 받았으며, 전체적으로도 캐릭터 사이의 미묘한 감정들을 보여 주는데 주효했다는 설명을 곁들였습니다. 싱어 감독에 따르면, 결말에서는 이 영화의 규모를 초월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네요.


히어로물의 고전으로 꼽히는 ‘엑스맨’ 시리즈를 다른 프랜차이즈 영화들과 비교했을 때 인기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는 질문도 나왔습니다. 싱어 감독은 “아주 간단하다. ‘엑스맨’에는 사람들을 위해 싸우는 수퍼 히어로 집단 대신 돌연변이들이 인간 사회에 스며들어 살고 있다”며 “여기서 보편적 공감대가 형성된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엑스맨들의 어린 시절을 다루는 ‘아포칼립스’에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성장 과정에서의 감정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아포칼립스’에는 특유의 농담도 나옵니다. ‘엑스맨’ 시리즈 같은 프랜차이즈 영화는 편마다 혹평과 호평이 번갈아 쏟아지는데요. 극 중 영화관에 놀러간 엑스맨들이 어떤 시리즈물을 보고 나와서 감상을 늘어 놓다가 ‘3편이 제일 별로’라는 말에 일제히 동의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이에 싱어 감독에게 ‘엑스맨’ 시리즈 중에서 가장 재미없던 작품이 뭐였냐는 질문이 나와 모두를 폭소케 했죠. 싱어 감독은 “다른 질문에 먼저 대답하면서 이 질문이 잊혀지길 바라겠다”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여담이지만, 지난 2009년 톰 크루즈와 호흡을 맞췄던 영화 ‘작전명 발키리’ 프리미어와 부산국제영화제 참석을 위해 두 번이나 내한했던 싱어 감독은 한국에도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는 듯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싱어 감독의 아버지가 한국전쟁 참전 용사였다네요. 감독은 “한국에 두 번 방문했는데 다시 가고 싶다”고 밝히며 취재진과 한국 팬들을 향한 첫 인사를 건네기도 했습니다.


프리퀄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게 된 싱어 감독은 후일도 기약했습니다. 그는 “‘아포칼립스’의 시대보다 10년 정도 뛰어넘어서 1990년대 쯤 일어나는 일에 대해 만들어 볼 것 같다”며 “제작자일지 감독일지는 모르지만 참여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엑스맨’을 떠나지 않은 ‘엑스맨의 아버지’가 어떤 작품으로 컴백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되네요.


[사진]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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