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왔습니다, 요요기공원역
아침에 친구를 배웅해주고 체크아웃 시간을 30분 정도 연장받아 뒹굴뒹굴거리다가 겨우 씻고 나왔다. 지난번 묵었던 숙소 주인이 편의를 봐 줘서 체크인 전에 짐을 맡길 수 있었다. 시부야에서 요요기공원까지는 걸어갈 수도 있는 거리지만 짐이 상당한 관계로 뭔가를 타야만 했다. 전철은 또 그 짧은 거리도 환승이 필수여서 귀찮았지만 택시를 타면 최소 15000원은 나올 각이어서 그냥 전철을 택했다. 접때는 하라주쿠 역에서 지상까지 올라와 치요다선을 타는 멍청한 짓을 했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환승 후 요요기공원역에 도착했다. 망할 2번 출구 계단... 짐을 들고 올라와 보니 약속 시간까지 30분이나 남아 있었다. 한국이었으면 벌써 카페 찾고 난리쳤을 텐데 그냥 얌전히 서서 기다렸다. 태국 유심은 여전히 쓰레기여서 카톡이나 라인 소통이 힘들었지만 견딜 만했다.
이윽고 약속 시간이 됐고 호스트가 나타났다. 오랜만이라며 인사를 나눈 후 숙소로 향했다. 열심히 청소 중인 것이 믿음직했다. 저번에는 쇼핑이나 먹방이 여행 목적이라고 했지만 이번에는 오로지 술이라고 말했다. 간단히 대화를 나눈 후 나는 체크인 시간까지 밥을 먹든 뭘 하든 나가기로 했다. 요요기공원역에서 하라주쿠까지 걷는 길이 너무 반가웠다. 그러나 역시 일요일이라 사람은 엄청났다. 걸어서 구경 좀 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맛집 찾기도 귀찮아서 그냥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집으로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빵이랑 콜라랑 물을 사 가지고 와서 먹었다. 심한 현지인의 삶이다.
편의점 빵으로 점심을 먹고 못 잔 잠을 자려다가 어제부터 제대로 씻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바로 목욕을 했다. 세탁기에 땀에 절은 빨래도 돌렸다. 친구 치쨩에게 메시지가 왔다. "진쨩 오카에리나사이!" 오카에리나사이라니... 울컥했다. 오늘 요요기공원역에 도착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일을 하고 있음에도 먼저 만나자고 해 준 것이었다. 기쁨과 기대 가득히 낮잠을 잤다.
오래지 않아 일어났지만 밖은 이미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한국에서처럼 할 일이 없으니 컴퓨터를 들고 카페에 나가기로 했다. 어느 카페가 좋을지 물색하다가 시부야 쪽에 있는 오래된 곳으로 가기로 했다. 손님의 이미지에 맞는 찻잔을 내 준다길래 기대하면서 갔다. 그런데 입구를 찾지 못해서 다른 손님과 좀 헤매다가 안내문을 발견하고는 서로 웃으며 카페로 진입했다.
카페오레를 시키고는 두근두근했지만 이렇게 수수한 찻잔이 나왔다. 실망스럽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커피 맛은 좋았다. 도쿄에 오기 전 마지막으로 봤던 영화의 메모를 정리하려고 했는데 펜 상태가 좋지 않아서 아주 고생을 하면서 한 시간 반 정도 개기다가 나왔다. 그리고 하라주쿠에 거의 유일하게 11시 30분까지 하는 카페로 2차를 떠났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나기 전 근황 토크를 하려면 나의 짧은 일본어 실력을 조금이라도 키워야 했기 때문이다.
살짝 배가 고픈 상태여서 토스트라고 적혀 있는 1인분 쯤 돼 보이는 메뉴를 주문했다. 그러나 웬걸... 한 3인분은 족히 될 것 같은 허니브레드가 나왔다. 너무 부끄러워서 몸을 돌리고 먹었다. 그러면서도 생크림이 우리나라와는 질이 다르다며 감탄했다.
11시쯤 카페를 나와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친구들에게 주려고 포장해 놓은 선물들을 챙겼다. 정말 진심으로 양손이 무거웠지만 줄 생각을 하니 마음이 훈훈해졌다. 설렘이 가득한 하치만 역 철로를 지나, 드디어 도착했다.
주인상은 어제 온 것처럼 담담히 나를 반겼다. 같이 먹으려고 준비해 온 복분자를 꺼내 한 잔씩 돌렸다. 정력에 좋다니까 다들 맛있게 마셔 주었다. 치쨩과 감독도 도착해 감동의 재회를 했다. 사실 감동까지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모두 나를 어제 본 사람처럼 대했기 때문이다 ㅋㅋㅋㅋㅋ 게다가 다들 내가 회사를 그만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국 사람도 웬만해선 모르는 일이다 ㅋㅋㅋㅋㅋ 우와사가 초하야이데시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맞아 주는 이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언제나처럼 처음 본 손님들에게 내 소개를 해 주는 것은 주인상의 몫이었다.
치쨩과 감독은 일 때문에 오래 있지 못하니 다음 약속을 잡았다. 25일에 드디어 우니를 먹으러 가기로 했다. 이런저런 밀린 이야기들을 하다가 치쨩은 먼저 돌아가고 나도 조금 더 있다가 감독과 함께 가게를 나왔다. 역시나 내일 예정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