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쿠 이키마쇼!
오랜만에 술을 마시고 한껏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오전은 금세 날아갔다. 또 편의점에서 대충 밥을 때우고는 세탁기를 돌렸다. 한가롭게 집에서 뒹굴다 보니 또 해가 질 무렵이 됐다. 도쿄까지 왔는데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시부야로 뛰쳐나갔다. 오늘 아점저 메뉴는 아부라소바다.
기다리는 것이 싫어 대충 사람 없을 시간에만 식사를 한다. 한국에서도 언제나 그렇다. 시간이 그렇다보니 바로 옆 초인기 가게인 규카츠집에도 줄이 없었다. 그러나 아부라소바를 먹기로 마음먹고 나왔기 때문에 얌전히 가게로 들어갔다. 매운 걸로 시켰는데 먹을 만했다. 보통으로 주문했으면 느끼할 뻔했다.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 일본도 남자들 먹는 속도는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나보다 늦게 들어왔는데 나보다 빨리 나갔다.
온몸에 기름 냄새를 두른 채 식사를 마치고 제일 가까이 있는 데다가 만만한, 늘 가는 카페로 향했다. 역시 뭐라도 써 보려고 컴퓨터를 지참했지만 딴짓만 실컷했다. 이날은 미치코상에게 연락을 했다. 별로 친하지는 않은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연하장까지 보내줬는데 연락도 안 하고 가게에서 마주치면 민망할 까봐서다. 마침 이날 바로 만나자고 해서 집에 잠깐 들러 남은 선물들을 들고 가게로 향했다.
내가 조금 늦었는지 미치코상은 이것저것 시켜서 먹고 있었다. 전날 먹다 남아서 가게에 맡겨 놓은 복분자를 또 돌리고 사람들에게 라면 한 개씩을 선물했다. 이 가게에서 주인상의 요리를 먹어 본 적이 없는데 자꾸 옆에서 권하기에 만만한 걸 시켜 봤다. 내가 제일 어려워 하는 동남아 요리가 주력이었다... 먹을 만한 게 나와서 다행이었다.
미치코상은 다음날 일 때문에 먼저 돌아가고, 약속도 안 한 감독이 나타났다. 이날은 내가 좋아하는 80년대 음악이 화제가 돼서 또 한 번 가게는 가라오케가 됐다. 감독으로부터 "진쨩은 니혼타쿠지?"라는 말도 들었다. 일본인에게 인정 받았다... 지난 번 여행 때 봤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친절한 여성분도 와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옛날에 고르덴가이를 가 보고 싶다고 했던 걸 기억해 줘서 갈래? 갈래? 분위기가 연출됐다. 한 세 시 쯤 가게를 접고 여섯 명이 택시를 나눠 타고 신주쿠로 향했다. 와... 진짜 택시비 살인적이었다. 2000 몇 백 엔이 나왔다. 내려고 했는데 감독이 내지 못하게 했다.
먼저 고르덴가이 근처의 중화요리집에 들어갔다. 고량주, 맥주에 요리를 미친듯이 시켰다. 이 사람들 이거 다 먹을 수 있나... 할 정도로 많이 주문했는데 정말 하나같이 맛있었다. 중국인인 듯한 주인은 좀 무서웠다.
감독은 내 옷이나 가방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 이날은 간만에 머리를 묶었더니 "오늘 왜 이렇게 기합이 들어가 있어?"라며 농담을 던졌다. 매일 옷을 갈아 입는데 수트케이스 무겁지 않았냐고도 물었다. 응 무거웠지 너네 선물 때문에... 시계가 오메가인 것도 알아봐 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작 한 시간이 지났는데 배가 불러서 더 이상 먹지 못하게 됐다. 나도 피곤하고 집에 가고 싶었지만 감독은 고르덴가이 견학을 시켜 줄 요량이었는지 구석구석 사람들을 끌고 다니면서 산보를 했다. 한 20만원 쯤은 나왔는데 나에게 돈을 한 푼도 못 내게 했다. 이런 야사시이 히토다치... 다들 3차를 고민하는 듯도 했으나 뭔 말인지 모르겠어서 다시 택시를 나눠 타고 돌아갔다. 감독은 여전히 택시비를 못 내게 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간만에 찾아온 도쿄의 한파가 뼛속까지 밀려들었지만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요요기공원의 푸르름을 보며 담배를 피우다 잠에 들었다.
일본은 온돌이 없어서 겨울에는 히터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게 또 사람을 괴롭게 한다. 히터를 켜도 이불 속이 차가운데 건조함이 심해서 코는 물론 목까지 말라 버린다. 그래서 숨을 못 쉬어서 잠에서 깨곤 했다. 가습기는 좀 무서워서 켜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7박8일 내내 그런 상태로 지냈다. 밖은 따뜻한데 안이 너무 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