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1. 23

신주쿠 이키마쇼!

by 나효진

오랜만에 술을 마시고 한껏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오전은 금세 날아갔다. 또 편의점에서 대충 밥을 때우고는 세탁기를 돌렸다. 한가롭게 집에서 뒹굴다 보니 또 해가 질 무렵이 됐다. 도쿄까지 왔는데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시부야로 뛰쳐나갔다. 오늘 아점저 메뉴는 아부라소바다.


기다리는 것이 싫어 대충 사람 없을 시간에만 식사를 한다. 한국에서도 언제나 그렇다. 시간이 그렇다보니 바로 옆 초인기 가게인 규카츠집에도 줄이 없었다. 그러나 아부라소바를 먹기로 마음먹고 나왔기 때문에 얌전히 가게로 들어갔다. 매운 걸로 시켰는데 먹을 만했다. 보통으로 주문했으면 느끼할 뻔했다.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 일본도 남자들 먹는 속도는 장난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나보다 늦게 들어왔는데 나보다 빨리 나갔다.


온몸에 기름 냄새를 두른 채 식사를 마치고 제일 가까이 있는 데다가 만만한, 늘 가는 카페로 향했다. 역시 뭐라도 써 보려고 컴퓨터를 지참했지만 딴짓만 실컷했다. 이날은 미치코상에게 연락을 했다. 별로 친하지는 않은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연하장까지 보내줬는데 연락도 안 하고 가게에서 마주치면 민망할 까봐다. 마침 이날 바로 만나자고 해서 집에 잠깐 들 남은 선물들을 들고 가게로 향했다.


내가 조금 늦었는지 미치코상은 이것저것 시켜서 먹고 있었다. 전날 먹다 남아서 가게에 맡겨 놓은 복분자를 또 돌리고 사람들에게 라면 한 개씩을 선물했다. 이 가게에서 주인상의 요리를 먹어 본 적이 없는데 자꾸 옆에서 권하기에 만만한 걸 시켜 봤다. 내가 제일 어려워 하는 동남아 요리가 주력이었다... 먹을 만한 게 나와서 다행이었다.



미치코상은 다음날 일 때문에 먼저 돌아가고, 약속도 안 한 감독이 나타났다. 이날은 내가 좋아하는 80년대 음악이 화제가 돼서 또 한 번 가게는 가라오케가 됐다. 감독으로부터 "진쨩은 니혼타쿠지?"라는 말도 들었다. 일본인에게 인정 받았다... 지난 번 여행 때 봤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친절한 여성분도 와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옛날에 고르덴가이를 가 보고 싶다고 했던 걸 기억해 줘서 갈래? 갈래? 분위기가 연출됐다. 한 세 시 쯤 가게를 접고 여섯 명이 택시를 나눠 타고 신주쿠로 향했다. 와... 진짜 택시비 살인적이었다. 2000 몇 백 엔이 나왔다. 내려고 했는데 감독이 내지 못하게 했다.


먼저 고르덴가이 근처의 중화요리집에 들어갔다. 고량주, 맥주에 요리를 미친듯이 시켰다. 이 사람들 이거 다 먹을 수 있나... 할 정도로 많이 주문했는데 정말 하나같이 맛있었다. 중국인인 듯한 주인은 좀 무서웠다.


감독은 내 옷이나 가방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 이날은 간만에 머리를 묶었더니 "오늘 왜 이렇게 기합이 들어가 있어?"라며 농담을 던졌다. 매일 옷을 갈아 입는데 수트케이스 무겁지 않았냐고도 물었다. 응 무거웠지 너네 선물 때문에... 시계가 오메가인 것도 알아봐 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고작 한 시간이 지났는데 배가 불러서 더 이상 먹지 못하게 됐다. 나도 피곤하고 집에 가고 싶었지만 감독은 고르덴가이 견학을 시켜 줄 요량이었는지 구석구석 사람들을 끌고 다니면서 산보를 했다. 한 20만원 쯤은 나왔는데 나에게 돈을 한 푼도 못 내게 했다. 이런 야사시이 히토다치... 다들 3차를 고민하는 듯도 했으나 뭔 말인지 모르겠어서 다시 택시를 나눠 타고 돌아갔다. 감독은 여전히 택시비를 못 내게 했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간만에 찾아온 도쿄의 한파가 뼛속까지 밀려들었지만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요요기공원의 푸르름을 보며 담배를 피우다 잠에 들었다.


일본은 온돌이 없어서 겨울에는 히터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게 또 사람을 괴롭게 한다. 히터를 켜도 이불 속이 차가운데 건조함이 심해서 코는 물론 목까지 말라 버린다. 그래서 숨을 못 쉬어서 잠에서 깨곤 했다. 가습기는 좀 무서워서 켜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7박8일 내내 그런 상태로 지냈다. 밖은 따뜻한데 안이 너무 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