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아베가 누군고 하니, 옆나라 총리 아베신조다. 얼마 전 그는 중의원에서, 한반도에 전쟁이 나면 ‘난민’들을 골라 받겠다고 발언했다. ‘난민’이란 당연히 한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가는 한국인들이다. 이런 것을 공식석상에서 묻고 답하는 코미디에 코웃음이 날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이를 ‘아베 도발’이라고 부르고 싶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상황이 보도되기는 했지만,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하게 됐던 것은 일본에 있는 지인으로부터 라인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최근 북한 관련해서 정세가 불안정한데, 괜찮니? 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늘 그렇듯이 북한 도발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으며, 새 대통령 선거 만으로도 피곤하다고 답했다. 다만 주가나 환율 문제가 걱정이라고.
지인의 메시지가 고깝게 느껴졌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고마운 마음이 컸다. 그러나 내게 먼저 라인을 보내면서까지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배경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마냥 기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전세계에서 일본만큼 한반도, 특히 북한에 관심이 많은 국가를 본 일이 없다. 언론은 거의 한창 때 TV조선을 능가하는 수준으로 북한 관련 소식을 보도한다. 일본에서 TV나 신문을 보고 있으면 내일이라도 전쟁이 터질 것만 같다. 정작 북한과 국경을 붙이고 있는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흐르는 냉기류를 감당하기도 버거운 데 말이다.
최근 김정남 피살 사건 당시 일본 언론의 풍경 역시 그 지대한 관심을 방증한다. 그들은 누구보다 빨랐고 남들과는 달랐다. 그 집요함을 보며 느껴지는 놀라움이 취재력에 대한 감탄이 아님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이번 ‘아베 도발’은 이처럼 은연 중에 이어져 온 아베 정부의 한반도 위기 조장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부분이다.
이 짓거리가 얼마나 한심한지는 자국민들도 알 것이라 생각한다. ‘난민’을 운운하는 등의 수위 높은 발언을 한 배경은 아베도 모리토모 학원 비리라는 급한 불을 끌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처럼 일본은 해외 소식을 집중적으로 전하는 것으로 자국의 뉴스에 대한 관심을 돌리곤 했지만, 이번에는 도를 지나쳤다. 떨어지는 지지율을 남의 나라 정세를 이용해 올려 보자는, 언발에 오줌 누기 식의 얕은 수가 그 나라에서는 통한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자, 진짜 전쟁의 발발 가능성이 낮다는 건 잠시 차치하고, 솔직하게 말해 보자. 만일 전쟁이 터졌을 때, 일본으로 갈 한국의 ‘난민’이 존재할까? 대가리에 총을 맞지 않고서 전쟁을 피하려고 고작 현해탄을 건넌다고? 한반도가 불바다가 되면 일본은 과연 무사할까? 가장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야 하는 나라야말로 일본이다.
더구나 지금도 동일본 대지진 이후 피해에 정부 책임을 인정 못하겠다고 항소까지 하는 것도 모자라 농산물 등의 방사능 수치를 제대로 발표하지 않아 민간에서 측정하게 하는 그 나라로 굳이 가서 생명 연장을 꾀한다? 어불성설이다. 삼척동자도 아베에게는 반박할 수 있을 터다.
우리나라에 ‘국뽕’이 존재하듯이 일본도 국가적으로 아시아에서 자기 민족이 제일 우수하다고 믿는다. 한국처럼 외국인에게 자국의 사계절이 멋지지 않냐고 묻거나 개인의 성취를 국가의 우월함으로 치환하는 우를 범하곤 한다. 특히 일본은 패전 이후 얻은 평화에 대해 수치심이 없다. 대신 교육된 자부심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며 자신들에게 밟혔던 국가의 민족들을 불쾌하게 만든다.
그런 탓에, 모두가 알다시피 한국인 가운데는 일본이라면 덮어 놓고 혐오감을 드러내는 사람이 꽤 많은 편이다. 때로는 일본인만 봐도 질색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증오심은 위안부 문제가 거론될 때 정도가 아니면 좀처럼 발현되지 않는다.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에 깊은 관심을 두는 사람 자체가 적기 때문이다. 현재 보통의 한국인에게 일본이라 함은 맛집 많은 난이도 레벨1 수준의 여행지, 한때 세계를 뒤흔들었던 문화 콘텐츠 생산국 정도인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특정 이슈가 아니면 일본에 관심이 없기도 하지만, 한국은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 및 쓰나미 같은 자연재해는 물론이고 2차 피해인 방사능 문제를 정치 공세에 이용한 적은 없다. 한국인으로서, 혹은 세계의 시민으로서 아베의 일본에 기대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발언에 분노하게 되는 이유다. 여기에 아베의 허튼 짓에 동요할 수밖에 없는 일본인들의 정서적 배경에도 상당히 유감이다.
딱 봐도 알겠지만 나는 자타공인 ‘일빠’다. 내 기준에서 ‘지금의’ 일본인을 미워할 이유는 없다. 그들은 전쟁을 일으키지 않았고, 나도 일제 강점기의 직접적 피해자가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일본은, 아베 정부는 혐오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만행을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것도, 이웃나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지키지 않은 것도 지금의 일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