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땅에 발 붙인 영웅담

영화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 리뷰

by 나효진

시민들의 피해는 대체 누가 보상해 줄까? 저 아비규환을 만들어 놓고도 죄책감이 들지 않을까? 이들은 무엇을 위해 싸우는 걸까? 슈퍼 히어로 영화를 보다보면 문득 드는 의문들일 것이다. 정의의 모습이란 몹시도 다양하고 가상의 이야기임을 이미 알고 있을지라도, 영웅이 악당과 결투를 벌일 때 아수라장이 되는 주변과 속출하는 사상자가 묘한 불편함을 자아내는 탓이다. 게다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영웅과 악당들이 머릿수를 늘려가며 이 같은 지옥도의 스케일은 더욱 커져가는 중이다.


마블은 스타크 그룹의 총수인 토니 스타크/아이언맨이 시민들의 피해를 보상하는 설정을 작품 속에 심어두며 면피할 구석을 마련해 뒀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돈으로 다 해결될 것 같다가도 그렇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이하 시빌 워)에서는 시작부터 이러한 상황에서 오는 히어로들의 죄책감을 드러낸다. 가깝게는 ‘어벤져스2 : 에이지 오브 울트론’ 속에서 완벽히 날아가 버린 가상 도시 소코비아의 피해자들이 전면에 등장하고, ‘어벤져스1’의 뉴욕 대참사도 심심찮게 언급된다.


그런 와중에 임무를 수행하던 히어로들이 대규모의 파괴극과 사상자를 발생시킨 사건이 일어났다. 스칼렛 위치(엘리자베스 올슨 분)이 동료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반스 분)를 구하려다 벌어진 명백한 실수라 해도, 평화의 나라 와칸다(MCU 속 가상의 나라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 소재인 비브라늄이 생산되는 곳)의 사절단이 목숨을 잃었다. 물론 히어로들이 손 놓고 있었다면 더 큰 피해가 발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결과론적으로 어벤져스가 책임을 피하기는 힘든 형국이다.


이에 세계 각국이 내놓은 특단의 조치는 어벤져스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다. 히어로들을 필요한 경우에만 활약할 수 있도록 하는 협정을 맺자는 주장이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협정에 사인하거나, 히어로를 그만 두거나. 이에 어벤져스는 ‘슈퍼 히어로 등록제’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내분을 겪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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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코비아의 궤멸에 누구보다 큰 죄의식을 갖고 있는 아이언맨/토니 스타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은 기꺼이 족쇄를 받아들인다. 비전(폴 베타니 분) 역시 어벤져스 결성 후 큰 사건들이 많이 발생했다며 엄청난 힘이 도전을 불러 일으킨다는 논리를 펼쳤다. 그러나 캡틴 아메리카는 협정이 책임 회피일 뿐이라며 아이언맨에 맞섰다. 캡틴의 오랜 친구이자 히드라에게 조종당해 분란을 일으키고 다니는 윈터 솔져/버키 반즈(세바스찬 스탠 분)도 마찬가지다.


이 치열한 논쟁에서는 열외지만 아이언맨의 편에 선 새 영웅들도 있다. 윈터 솔져 때문에 아버지를 잃고 와칸다의 새 국왕이 된 블랙 팬서(채드윅 보스만 분)는 복수심에 불타 아이언맨 팀에 합류했고, 스파이더맨(톰 홀랜드 분)은 토니의 섭외로 영웅으로서의 첫 발을 내딛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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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로 갈라진 어벤져스는 서로의 정의를 내세우며 격렬히 다툰다.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킨 승리는 승리가 아니다’라던 와칸다 국왕의 말에 깊이 공감하던 아이언맨 팀은 “모두를 구하지 못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 “죄책감을 극복하지 못하면 누구도 구하지 못한다”는 캡틴 아메리카 팀과 맞붙는다. 윈터 솔져가 세뇌의 희생양임을 밝히고 구조의 폭력성을 밝히려던 캡틴 아메리카는 아이언맨 팀에 의해 사사건건 앞을 가로막힌다. 양측 모두에게는 합당한 신념이 있었기에, 이들 사이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어떠한 영화적 마무리가 있더라도 고민은 온전히 관객들의 몫으로 돌아간다.


히어로 영화에서 대의를 위한 희생은 언제나 묵과의 대상이었다. 이 천편일률적 도식은 정의(正義)의 정의(定義), 영웅 내면의 고민으로 옮아 갔다. 점점 거대해져만 가는 영웅들의 시장에서 더 이상 식상하지 않은 주제는 없다고 느껴질 때쯤, 익숙해진 공식을 현실적으로 풀어낸 것이 ‘시빌 워’다. 가상의 세계에서 펼쳐지던 다소 추상적인 주제 의식들은 이 영화를 통해 기어코 땅에 발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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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죄없는 목숨에까지 필연적으로 해를 끼치게 되는 영웅들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문제시됐다. 단 몇 명의 사람이 움직이는 구조가 수천만을 위협한다. 극단적으로는 전쟁이 이러한 방식으로 발발하지 않았나. 어차피 거대한 힘에 조종자가 필요하다면, 이를 구조에 맡길 지 선한 개인에게 맡길 지의 문제다. 건설 현장에 쓰일 목적으로 만들어진 다이너마이트가 전쟁에 악용되는 것과 비슷한 광경을 우리는 역사 속에서 지속적으로 목격해 왔다. 어쩌면 인간은 막무가내로 발명한 힘을 다룰 깜냥이 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시빌 워’는 이 오래된 난제에 힘의 본질과 실체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평생의 벗이지만 세뇌로 인해 악행을 일삼아 만인의 적이 된 윈터 솔져를 감싸는 캡틴 아메리카를 보자. 백병전의 시대는 이미 지났다지만, 거의 모든 국가가 군대를 보유하고 있다. 이들이 임무 수행 중 사람을 죽였다면, 이는 살인일까? “지금까지 네가 한 일들이 네가 한 것이 아니냐”고 윈터솔져에게 던진 아이언맨의 질문은 군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개인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일본 만화 ‘바람의 검심’의 히무라 켄신이 ‘사람을 살리는 검’을 이야기하며 역날검을 들고 다닌다 한들, 폭력의 작용·반작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폭력으로 공격받은 뒤 완전한 비폭력으로 대응하는 일은 과연 가능할까. 그렇다고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는 것은 옳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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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빌 워’는 이처럼 아직도 정답을 찾을 길이 없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전혀 뜬 구름 잡는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는 까닭이 있다. 가족을 잃은 블랙 팬서와 지모 대령(다니엘 브륄 분), 다신 걷지 못하게 된 제임스 로디(돈 치들 분), 의지와 반대로 살육극을 벌이게 된 윈터 솔져 등 구조와 거대한 힘에 의해 실제 피해를 입은 자들을 이야기 속 주역으로 등장시키며 ‘시빌 워’는 현실성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캡틴 아메리카’의 솔로 무비라기에는 캡틴 아메리카와 윈터 솔져의 이야기가 지나치게 지엽적으로 다뤄졌고 도구화됐다는 인상을 남기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저 하나의 히어로 무비로 봤을 때, ‘시빌 워’가 어떠한 지향점을 남기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드디어 영웅담도 땅에 발을 붙이는 시대가 왔다.


[사진]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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