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남과 여’ 리뷰
* 이 글에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에 빠졌다. 머나먼 이국 핀란드의 신비로운 분위기에 휩싸여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은 각자 아내와 남편이 있음에도 격렬하게 서로를 탐한다. 이 ‘남과 여’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이끌림을 호소하듯 내뱉으면서도 본래 짝과의 위태롭고 연약한 연결고리를 끊지 않는다. 실로 애매한 사랑이다. 이들의 모호한 감정은 늘 그랬듯 애먼 이들에게 상처를 입힌다.
영화 ‘남과 여’를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불륜 얘기’다. 핀란드 헬싱키의 국제학교에서 우연히 만난 상민(전도연 분)과 기홍(공유 분)이 폭설 속 뜨거운 하룻밤을 보낸 후 서로를 잊지 못해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그 감정을 이어나간다는 내용이 이 영화의 주요 골자다. 두 사람의 사랑을 아름답게 그리기 위해 핀란드의 아름다운 풍광까지 동원했으나 결과물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정통 멜로를 표방하고 있는 것치고는 서사와 감정 묘사가 다소 피상적인 탓이다.
기실 멜로만큼 탄탄한 내러티브와 설득력 있는 감정 표현이 중요한 장르도 없을 터다. 때리고 부수는 액션이나 낭자한 피와 살점 없이도 관객들을 극 안으로 잡아 끌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누구나 한 번 쯤은 겪었을 사랑 이야기를 다루면서 공감 포인트를 배제하는 것은 곤란하다. ‘남과 여’에는 이 같은 요소들이 전체적으로 부족하다.
상기했듯 불륜은 지구상에서 최고로 애매모호한 사랑의 형태다. 결혼이라는 사회적 약속이 관계의 기저에 깔려 있는 상태에서 타인과의 사이에 발생한 사랑인지라 그저 마음과 마음의 뭉침과 흩어짐으로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불륜을 다룬 영화들은 스스로도 컨트롤하기 어려운 사람의 마음-‘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유명한 카피처럼-을 부각하거나 기존 배우자에게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남과 여’는 시작부터 상민과 기홍의 끌림 자체를 온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눈 속에 파묻힌 사우나에서 입을 맞추고 옷을 벗어 젖히는 이들의 감정은 단순한 육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름 석 자조차 모른 채로 헤어진 상민과 기홍이 서울에서 조우하는 장면도 그렇다. 도대체 기홍은 어떤 경로로 상민의 가게 앞에 나타날 수 있었을까. 이후로도 두 사람의 사랑은 굉장히 단조롭게 표현된다. 기홍이 상민을 찾아가거나, 상민이 기홍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만나면 몸을 섞는다. 둘 사이에 가족이 끼어들면 죄책감에 맞췄던 시선을 피한다. 그러다보니 절절히 서로를 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 둘이 어쩌다 좋아하게 됐나 보다’라며 넘어가는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남과 여’는 불륜이 가진 애매함만을 극대화해 보여주는 것에 그칠 뿐이었다. 이 영화와 꼭 닮은 애매한 남자 기홍이 이 같은 단점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그는 어떤 물음에도 “그런 셈이죠” “반반입니다”라며 확답하지 않는다. 파트너인 상민조차도 내내 이를 지적할 정도로 기홍의 태도는 애매했다. 정신적 불안에 시달리던 그의 아내 문주(이미소 분)가 영화 말미 자신 때문에 외로웠을 기홍을 이해한다는 식으로 말할 때도 의아함이 앞섰던 이유다.
이 영화 속 단 한 군데의 명장면이 있다면 벽을 사이에 둔 상민과 기홍의 모습이 변화하는 대목을 꼽을 수 있겠다. 처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 전 두 사람은 각자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손을 뻗어 만질 수 없는 유리문을 가운데 두고 있었다. 당시에는 기홍의 끈질긴 구애에 상민이 화답하듯 닫혔던 유리문이 열렸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이들의 사이에 있던 것은 불투명한 호텔방의 문이었다. 서로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 문은 살짝 열려 있었다. 상민과 기홍은 문고리를 돌리지 않은 채로 서로를 등진다. 그 변화가 애매한 사랑 만큼이나 애매한 영화였던 ‘남과 여’의 결말만은 빛나게 만들었다.
[사진] ‘남과 여’ 포스터,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