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우먼 판타지는 이제 그만

영화 ‘조이’ 리뷰

by 나효진

제니퍼 로렌스가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20대 여배우라는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데뷔작인 ‘버닝 플레인’으로 베니스 영화제 신인 연기상을 수상한 후 ‘윈터스 본’으로 세계 굴지 영화상의 최우수 배우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그때부터 제니퍼 로렌스의 탄탄대로는 시작됐다. 그의 첫 프랜차이즈 작품인 ‘엑스맨 : 퍼스트 클래스’가 크게 흥행했고, 2012년부터는 ‘헝거게임’을 통해 원톱 여배우로서의 입지를 공고히했다. 그해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으로 골든글로브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커리어에 정점을 찍은 1990년생, 스물 여섯의 배우에게는 ‘전도유망’이라는 말도 모자랐다.


이번에는 영화 ‘조이’ 속에서 여성 CEO 조이 망가노로 분했다. 전설적 인물의 실화를 다룬 영화인데다 그녀에게 첫 오스카 트로피를 안겼던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데이빗 O. 러셀 감독과 함께 하는 세 번째 작품이라 기대도 컸다. 이 같은 예상에 보답하듯 제73회 골든글로브는 제니퍼 로렌스에게 여우주연상(뮤지컬/코미디)을 선사했다.


그러나 축하에 앞서 ‘조이’라는 영화도, 주인공 조이 망가노라는 캐릭터도 식상함의 늪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할 듯하다. 특히 캐릭터에 대한 비판에는 제니퍼 로렌스의 일관된 필모그래피도 한몫한다. 그녀가 할리우드가 제니퍼 로렌스라는 어린 배우에게 요구하는 역할을 몹시도 성실하게 소화해내고 있는 탓일까. 늘 당당한 말괄량이에 독설을 서슴지 않으며 남자의 도움 따윈 받지 않는, 그러면서도 항상 성공 가도를 벗어나지 않는 제니퍼 로렌스의 이미지는 작품 속 뿐만 아니라 스크린 밖에서도 이어졌다. ‘조이’에서는 이 같은 모습이 극에 달했다. 슬슬 그녀를 지켜 보던 이들에게 피로감을 줄 수 있는 시점이다.

201603101732139410_2.jpg



‘조이’는 조이 망가노(제니퍼 로렌스 분)와 그녀 주변의 여성들을 끊임 없이 비교한다. 조이의 곁에는 십 수년을 침대 위에서 막장 드라마에 심취한 채 살아가는 어머니, 그녀를 향해 “너는 강하고 똑똑한 여자”라고 하면서도 좋은 남편을 찾고 예쁜 아이를 낳는 것을 행복이라 말하는 할머니가 있다. 이 두 명은 물론 능력 없는 전 남편과 그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 ‘탕아’ 아버지의 생계까지 책임지기 위해 꿈과 멀어진 조이는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불평 없이 산다. 어쩌면 불평할 틈이 없었는지도 모르지만. 몰염치한 가족들의 이야기가 조이의 고군분투를 더 빛나게 만드는 것만은 사실이다.

감독은 조이가 극한 상황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는지, 그녀의 성공 신화에 모든 주변인들의 서사를 밀어 넣는다. 그러면서 “왕자는 필요 없다”고 되뇌이는 조이를 보면 그녀의 고통을 과도하게 주입한다는 인상까지 남을 정도다. 이 같은 불필요한 대사들이 난무하지 않더라도 조이는 충분히 대단한 인물인데도 말이다. 영화는 조이의 훌륭한 성과보다 이를 이루기 위해 그녀가 외부로부터 얼마나 괴롭힘을 당했는지를 집중 조명한다. 그녀 내면의 갈등은 자신에게 빌붙는 아버지와 전 남편을 쫓아내는 장면 정도로 갈음한다. 결국 이 영화는 ‘조이는 참다가 반격에 나섰고 결과는 대성공이었죠’ 따위의 내레이션으로 황급히 마무리된다. 러닝타임은 한정돼 있는데 곁가지가 너무 많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조이가 딸, 아내, 엄마의 역할을 강요당한 것은 맞다. 그러나 돌연 이 모든 형태의 삶과 단호히 선을 긋는 조이의 모습은 소위 ‘김치녀’와 ‘개념녀’를 나누는 이분법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성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몽땅 거부하는 것으로 해방을 외쳤던 1세대 페미니즘에서 크게 나아가지 못한 모양새다. 극 중 갑자기 각성하게 된-이조차 계기는 나오지 않는다-조이가 긴 머리를 단발로 자르는 대목은 실소까지 나올 지경이다. 조이는 끝내 ‘남성 중심 사회에서 두각을 드러낸 한 명의 커리어우먼’이라는 전형적인 표현으로도 설명될 일차원적 캐릭터로 남고 말았다. 그리고, 그래서 ‘조이’는 촌스럽다.

201603101732139410_3.jpg



배우 제니퍼 로렌스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기실 그녀가 여성으로서 영화계에서 보여주고 있는 성취만으로도 고마운 존재인 것은 확실하다.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 여성 영화인들이 입을 모아 멋진 ‘여자 영화’와 여성 캐릭터의 부재를 말하고 있는 상황이니까. 상기했듯 제니퍼 롤네스는 ‘헝거게임’ 시리즈를 원톱 주연으로 세 시즌이나 이끌었을 뿐더러 평단의 호평까지 높치지 않은 배우다. 여성이 단독 주연을 맡는 것도 힘든 마당에, 이를 흥행시킬 수 있는 여배우는 드물다. 하지만 그가 호평받았던 캐릭터의 면면을 살펴보자면 매번 똑같다는 인상이 남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이 ‘조이’를 통해 보여준 시대착오적인 여성의 이미지는 결국 영화의 완성도를 저하시켰다. 이제 제니퍼 로렌스도 그에게 요구되는 슈퍼우먼 판타지는 그만 충족시켜줘도 좋지 않을까. 올해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쥔 ‘룸’의 브리 라슨이 그녀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으니.

[사진] ‘조이’ 스틸컷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불륜, 그 애매한 사랑의 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