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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효진 Apr 28. 2019

2주 만에 돌아온 도쿄

2017.6.14~2017.6.24 ⑩, ⑪

드디어 이번 여행의 마지막날이다. 하루 만에 열흘 간의 기록을 억지로 떠올려내며 문장으로 쓸 수 있는 감정들이 그저 불만 뿐이었다는 것에 마음이 걸린다. 순전히 나의 게으름 탓이다. 앞으로 남은 10회 이상의 여행기도 대부분 그럴지도 모른다는 사실도 못내 아쉽다. 잠시 스포 아닌 스포를 하자면,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19번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지 2주가 채 되지 않았다. 생업을 팽개치고 가야할 만큼 도쿄행은 내게 가슴이 시키는 일이었고 지금도 그렇지만ㅋㅋㅋ, 그 행복한 일상 가운데 글로 적어내릴 수 있는 감정의 조각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건 내 능력부족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19회의 도쿄 여행 가운데, 무엇이 일어났는지도 쉽게 떠올리지 못하는 2017년 3월과 6월은 가끔 본능적으로 그날들의 공기까지 후각에 끼얹혀 올 만큼 내게 아름다운 마음들을 남겼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시점을 돌려.


이 반년간 아주 절절히 체감했던 것 중 하나는 일본인들이 카레에 환장을 한다는 점이었다. 특히 이리에상은 자기 인스타 계정을 거의 카레로 채울 만큼 카레 마니아다. 그런데 나는 세상에 떨어진 이래로 카레를 좋아해 본 역사가 없다. 급식에 카레가 나오면 국 자리를 비우고 밥을 먹을 정도였다. 수프카레라면 어떻게 먹을 마음까지는 들었기에, 마지막날 점심은 가까운 하라주쿠에 가서 카레를 먹기로 했다. 구글맵에 의존해서 갔는데, 그런대로 나쁘지는 않은 맛이었다.



그리고 시부야 근처 작은 이자카야에 갔다. 내 여행기에도 두어번 등장했던 곳인데, 처음 혼자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부터 단 한 명이라도 친구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컸던 나는 인스타그램을 만들어 시부야 근방의 바나 이자카야 등을 닥치는대로 팔로했다. 그 가운데 내 서툰 일본어 포스팅에 좋아요를 거르지 않고 눌러줬던 이자카야다. 주인이 낯을 좀 가려서 재미가 없지만 이때까지는 의리로라도 한 번 얼굴을 비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제 오토시 문화에 익숙해진 나는 오토시만 주문하고 거봉사와 두 잔 정도를 마셨다. 주인은 의외로 나를 기억해 주었다. 그렇지만 긴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내가 지금 마음의 고향으로 생각하는 그 동네를 만나고 상성이 맞았던 것도 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날이니 늘 가던 바에 갔다. 조금 사람이 적어 섭섭했던 5월과는 달리 친구들이 많이 나와 주었다. 고향인 홋카이도에 다녀왔다는 바 주인의 특산물 선물을 저마다 받아들었다. 그러던 중 이리에상이 가고 싶은 술집이 있다고 해서 그리로 가서 나는 논알콜 메론소다를 마셨다. 이번 여행에서 만났던 동갑친구 메구미가 두유요구르트팩을 선물로 준비해 주었다. 그리고 나는 이 선물에 푹 빠지게 되었으나... 이 이후로 쇼핑 따위 1도 없는 삶을 살게 되어 아직도 다음 통을 손에 넣지 못했다는 아주 슬픈 이야기...




다시 바로 돌아와 2층으로 올라갔다. 내가 돌아가는 날이라고 와인이며 샴페인을 땄다. 내가 원했던 건 이정도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놀아달라고 하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지만 첫날, 특히 마지막날 정도는 앞으로 언제 볼 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니 나와줬으면 하는 그런 어린 마음. 술을 마시면서 간만에 게임도 했다. 그러나 한국인이라고 봐주지는 않았다 ㅋㅋㅋㅋㅋ... 몇시까지 마셨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일단 마지막 사진이 오전 3시 정도였다.



에어비앤비 주인에게 레이트체크아웃을 부탁하고 동네 스파게티집에 갔다. 꽤 전통 있는 집이었는데, 옆자리에서 커플이 서로 먹여주는 것이 눈꼴시렵긴 했지만 맛있게 먹고 나왔다. 다음에 가 보니 사라져 있어서, 이날 가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비행기를 타러 가기 전까지 동네 사진을 구석구석 찍었다. 저번 여행에서 우연히 찍힌 동네 사진으로 한참을 앓았기 때문에 닫힌 바들과 거리를 찍으며 다시 눈물이 솟으려는 걸 꾹꾹 눌렀다. 또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한국에서의 출세만을 꿈꿨던 내 직업관이 이때부터 흔들렸던 것 같다. 행복의 다른 모양을 꿈꾸기 시작했다.



신주쿠버스터미널에서 하네다행 리무진을 타면 반드시 우리 동네를 다시 거쳐 간다. 그걸 깨달은 후로부터는 조금이라도 동네를 눈에 담으려 창가에 매달린다.


집에 돌아오니 박살난 캐리어 바퀴가 보인다. 에어비앤비 세 군데를 옮겨 다녔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 캐리어를 질질 끌고 빗속에서 길치美를 또 한껏 뽐내다가 울 뻔 하기도 했다. 15분 거리를 한 시간 넘게 걸어다니며 또 한 번 인생의 말할거리 하나를 추가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주고 받아온 작은 선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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