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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효진 Apr 21. 2016

‘질투의 화신’ 두고 벌인 KBS의 물귀신 작전

단 한 편의 드라마가 완성되는 과정을 21부작 드라마로 그려낸 SBS ‘온에어’는 현장을 묘사하는데 ‘가감 없었다’. 스타 작가의 권력, 방송국 갑질, 작품성과 상품성 사이에서 고뇌하는 초짜 PD, 소신은 있는데 싸가지는 없는 연예인과 그를 케어하는 매니저의 갈등까지 드라마판 잡음이란 잡음은 모조리 담았다.



‘온에어’는 흥행 불패 신화를 기록하고 있는 작가 서영은(송윤아 분)의 첫 작품 ‘티켓 투 더 문’을 ‘온에어’ 시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막장도, 재벌과 신데렐라도 등장하지 않는 데다가, 정신지체아와 어릴 적 헤어진 의사 언니의 모습을 다룬다니 방송국 입장에서는 제 아무리 서영은이라도 덮어 놓고 싸인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 와중에 같은 시기 타 방송국의 경쟁 드라마는 엄청난 자본과 스타 배우로 물량 공세를 한다하니 드라마국장의 시름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티켓 투 더 문’ 쪽은 작가와 PD에 주연 배우까지 사이가 좋지 않다. 드라마를 하니 안 하니로 입씨름을 반복하는 상황에서 편성까지 엎어진다. 당초 편성이 확정된 드라마가 방영되기 전 ‘땜빵’ 식으로 만들어질 미니시리즈였다지만, 이대로라면 리스크가 너무 크리라는 방송국의 판단에서다. 서영은은 소위 ‘편성 간보기’를 하는 드라마국장을 향해 “저랑 작품 하나만 할 것 아니잖아요?”라며 압박한다.


그런데 드라마 만큼, 아니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올해 방영을 앞두고 편성에 난항을 겪고 있는 ‘질투의 화신’ 이야기다. 원래 KBS에서 ‘온에어’될 예정이었지만, 지난 19일 제작사 SM C&C측은 이 드라마가 SBS 수목극으로 편성됐다고 전했다. 편성시기와 제작 일정 등이 맞지 않아 부득이하게 SBS로 옮겨갔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질투의 화신’은 올 여름 중 KBS 2TV 월화극 자리로 들어가기로 되어 있었으나, 방송국 측에서 해당 시기에 ‘구르미 그린 달빛’을 편성하는 바람에 갈 곳을 잃었다.



그러나 KBS는 ‘질투의 화신’을 ‘함부로 애틋하게’ 후속작으로 편성을 확정했다며 딴소리를 하고 나섰다. 제작사 측은 ‘질투의 화신’ 배우 스케줄 문제로 처음부터 여름 편성을 고집했고, 방송국이 차일피일 계약을 미뤘다는 것이 사실이다. 백번 양보해서 KBS의 주장대로 ‘질투의 화신’이 가을 편성을 받는다 한들, 초반 회차는 추석에 걸리며 썩 좋지 못한 출발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와중에 ‘질투의 화신’ 연출으로 내정된 PD까지 방송국에 사표를 냈다. 이쯤 되면 굳이 ‘질투의 화신’이 KBS를 선택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할 지경이다.


자체 제작 드라마인 ‘구르미 그린 달빛’도 하고 싶고 ‘질투의 화신’도 포기할 수 없던 KBS의 욕심이 부른 촌극으로 정리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KBS 측의 사후 대처다. ‘편성 간보기’를 하다 놓친 드라마에 적반하장 화를 내며 상도의를 운운하고, “지금이라도 돌아오라”며 떼를 쓰는 상황이다. 거기다 KBS는 배우까지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질투의 화신’ 여주인공 공효진이 내걸었던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웠다는 것이다.


KBS의 물귀신 작전은 어느 정도 성공적이다. 이 입장 표명 이후 공효진의 예민함을 지적하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러하다. 그러나 막상 KBS가 주장한 ‘여배우의 까다로운 요구’ 가운데 들어준 것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제작사 측 역시 배우의 무리한 요구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입을 열면 열수록 KBS를 바라보는 시선이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깔끔치 못했던 일처리를 인정하면 될 것을 굳이 여배우의 머리채까지 잡을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다시 ‘온에어’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드라마국장은 소속 배우의 분량을 늘리지 않으면 투자금을 빼겠다는 연예기획사 대표를 향해 “이 방송국에서 그 회사 연예인들 다 빼라”고 강짜를 놓는다. KBS의 이번 대처는 이 같은 갑질과 다를 바 없었다. 부디 이번 사건이 깨끗하게 마무리되서 KBS가 졸렬하다는 이미지를 벗을 수 있길 바란다.


[사진] SBS ‘온에어’ 방송화면 / 문화창고·매니지먼트 숲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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