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권율, 이제 ‘착한 남자’는 잊어라

영화 ‘사냥’

by 나효진

김기덕 감독의 2012년작 ‘피에타’ 속 기타남을 기억하시나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이 그렁그렁 물기가 가득찬 눈망울과 뽀얀 피부는 캐릭터가 가진 애틋함을 배가시켰었죠.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이름 권율이 이제는 낯설지 않습니다. KBS 2TV 일일드라마 ‘천상여자’에서 특유의 곱상한 이미지에 어울리는 재벌남을 소화하더니, 이내 영화 ‘명량’의 이회로 분해 강직한 모습까지 선보였죠. 올 초 MBC ‘한번 더 해피엔딩’에서는 산부인과 의사로 분해 나쁜 척 하는 착한 남자를 연기했습니다.

늘 ‘어쨌든 결론은 착한 남자’였던 권율이 영화 ‘사냥’에서는 완벽한 악역으로 변신했습니다. 다양한 캐릭터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이 이뤄진 걸까요. ‘사냥’에서 권율이 맡은 맹실장은 말끔하고 유약한 외피 아래 숨겨져 있던 광기를 서서히 드러내는 인물입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극 중 발생하는 모든 사건은 맹실장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권율은 ‘사냥’ 속에서 내내 수트 차림입니다. 깊은 산 속에서 단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을 그리는 영화인지라 다른 등장 인물들은 전부 편안한 복장인데, 권율만은 정장에 구두를 입고 나오죠. 지난 23일 열린 ‘사냥’ 기자간담회에서도 그는 버건디 톤의 깔끔한 수트를 차려 입고 나타났죠. 당연하게도 옷 때문에 고생하지 않았냐는 질문이 나왔는데요. 권율은 “고생이 많았습니다. 정확하게 영화를 보신 것 같습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movie_image (6).jpg


그는 “영화를 보시면 저는 안성기 선배님이나 엽사 선배님들, 한예리씨에 비해서 뒤늦게 나타나잖아요? 헐레벌떡 오기만 하는 되는 것이어서 체력적으로 힘들진 않았어요. 그런데 옷차림은 힘들었습니다”라며 “구두를 신고 가파른 산을 다녀야 하니까 발이 아파서 밤마다 고생했어요. 연속으로 촬영할 땐 발이 붓고 구두가 얼고 등등…”이라고 고생담을 털어놨습니다. 그러면서 “밤에 산 속에서 수트만 입고 있으니까 껴입고 싶기도 했는데, 수트빨을 선택할 것인지 보온을 선택할 것인지 갈등했습니다. 결국 수트빨을 지키기 위해 그 고생을 몸으로 체험했죠”라고 덧붙여 웃음을 줬습니다.


언급했듯 권율은 여태껏 어떤 모습이든 결국은 ‘착한’ 역할들을 해 왔는데요. 겉모습만 멀끔한 어리바리 건달로 분한 소감이 궁금했습니다. 이에 대해 권율은 “다른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드렸던 이미지와는 다르게 날이 서고 부족해보이면서 이기적이고 싸가지 없는 역할을 했는데요. 보니까 굉장히 낯설면서도 재밌기도 하고, 정말 싸가지 없어 보이기도 하고… 보면서 흠칫흠칫 놀라기도 했습니다”라며 자신의 변신을 낯설어하면서도 만족감을 드러냈죠.


이때 조진웅은 “극 중 맹실장이 권율의 모습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을 보태 폭소를 자아냈습니다. 이에 권율은 “제가 아직까지 캐릭터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는데…”라며 짐짓 맹실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끼어들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말해 다시 한 번 큰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감독까지 “싸가지가 없긴 한데 착한 친구”라고 장난스레 덧붙였죠.

이처럼 ‘사냥’에서는 안성기, 조진웅 등의 주연을 비롯한 걸출한 조연진의 활약은 물론이고 권율의 대변신까지 돋보였습니다. 어리숙한 양아치 맹실장이 돌연 눈에 살기를 띠는 순간을 포착하는 재미도 이 영화의 관람 포인트가 될 듯하네요.

[사진] ‘사냥’ 스틸·비하인드컷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조진웅, 지독한 악역으로 돌아온 순정 마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