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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효진 Sep 18. 2016

‘배우’ 이병헌의 달콤한 인생

영화 ‘매그니피센트7’ 이병헌

영화 ‘매그니피센트7’이 지난 14일 한국에서 최초로 관객들을 만났습니다. 명장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를 존 스터지스 감독이 ‘황야의 7인’으로 리메이크했고, 반 세기가 넘게 지난 후 안톤 후쿠아 감독이 이를 ‘매그니피센트7’으로 재해석했죠. 우리나라 최고의 배우 이병헌의 여섯 번째 할리우드 진출작이면서 그가 처음으로 정의로운 역할을 맡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 나가는 배우 크리스 프랫부터 덴젤 워싱턴에 에단 호크까지 함께 했습니다. 서부극의 전설로 불리는 영화를 리메이크한 작품 속에서 이병헌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생각하니 괜스레 더 눈길이 갑니다. 최근에는 토론토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는 쾌거까지 이룩했습니다.


외화는 배우나 감독이 내한하지 않는 이상 기자간담회를 열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에는 이병헌이 나섰습니다. ‘매그니피센트7’의 첫 공개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 이병헌은 홀로 나타났죠.



이미 25년차 베테랑 배우지만, 혼자서 취재진의 플래시와 질문 세례를 감당해야 하니 이병헌의 얼굴에도 긴장감은 역력했습니다. 그는 “이 영화에 정말 많은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나머지 여섯 명은 다른 나라에서 각각 홍보를 하고 있어서 오늘은 단촐하게 나와서 인사드리게 됐습니다”라며 떨리는 첫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는 아주 어릴 적 아버지와 ‘주말의 명화’를 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그때 ‘황야의 7인’에 대한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었다네요. 이 다음에 커서 카우보이가 돼야 하겠다고 마음 먹을 정도로 어린 이병헌에게는 이 영화가 크게 자리잡았던 모양인데요. “몇 십 년이 지나고 카우보이는 안 됐지만 배우가 돼서 이 영화의 일곱 명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 영광이며 감동으로 다가옵니다”라고 밝혔습니다.


동양 배우가 할리우드 작품에서 의로운 역할을 맡는 경우는 안타깝게도 드뭅니다. 그래서 이병헌이 ‘매그니피센트7’의 빌리 락스로 분했다는 점은 의미가 큰데요. 막상 이병헌은 이에 대해 굉장히 담담했던 듯합니다. “악역이나 선역에 대한 감흥이 저에게는 다르지 않았어요. 배우 입장에서는 어설픈 선역보다 확실한 악역이 더 매력적인 경우가 많거든요”라는 설명이었습니다. 그보다는 굳이 동양인을 캐스팅하지 않아도 되는 역에 감독의 낙점을 받았다는 사실이 더욱 자랑스러웠다네요.



배우 이병헌에게 있어 ‘매그니피센트7’은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 이후 두 번째 서부극입니다. 그는 날씨 때문에‘놈놈놈’ 보다 이 작품이 훨씬 힘들었다고 말했는데요. 40도에 달하는 더위는 물론이고 90%에 육박하는 엄청난 습도까지 겹치다 보니 촬영 현장에는 앰뷸런스까지 대기하고 있었다네요. 게다가 늪지대가 많다 보니 뱀과 악어를 잡는 스태프까지 존재했다고 증언해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명배우들과의 호흡이야말로 이병헌에게 가장 궁금한 점이었는데요. 크리스 프랫에 대해서는 “점심 시간만 되면 먹으러 가기 전에 늪인지 호수인지 낚시를 해서 주방장에게 구워 달라고 하더라고요”라고 밝혀 웃음을 줬습니다. 그러면서 “촬영이 없는 날 술도 한 잔 하고, 촬영장에 놀러 온 에단 호크의 식구들과도 친해졌어요. 굉장히 아티스트적인 면이 강하고 문학적인 사람입니다”라고 에단 호크와의 뒷얘기를 전하기도 했죠.


에단 호크와는 영화 속 시퀀스들을 함께 만들어가는 발전적 협업도 함께 했었다는데요. 이병헌은 “다른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애드리브가 허용이 안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착각이었습니다”라며 “수줍음도 많았고, 제안하기도 부끄럽고 용기도 안 나서 대본에 있는 것만 철저히 하고 말았었는데 ‘매그니피센트7’에서는 많은 것들이 열려 있음을 깨닫게 됐죠”라며 배우로서 또 한 뼘의 성장을 할 수 있었음을 고백했습니다. 특히나 대본에서 빌리 락스의 행동들은 한 줄 정도로 묘사된 부분이 많아 어려움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는데, 그는 이 여백을 채워 나가며 영화를 촬영했다네요.


좋아하던 작품의 리메이크판에 주역으로 출연하고, 존경하는 배우와 함께 할 수 있는데 촬영 현장까지 재미가 있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배우로서는 최고의 달콤한 인생을 누리고 있다고 해도 모자람이 없겠습니다. 그러나 이병헌은 할리우드에서의 야망 같은 것은 없다고 밝혔습니다. “어쩌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배우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너무 감사하고 있어요. 야망을 가진다고 다 된다면 야망을 갖고 있겠죠. 어떤 나라의 어떤 작품을 할 지 항상 기다리면서도 불안한 감정이 있습니다”라는 것이 그의 진심이었습니다.


이병헌은 추석 연휴와 맞물려 개봉한 ‘매그니피센트7’의 관람 포인트를 소개해 달라는 요청에 “추석엔 뭐니뭐니 해도 서부 영화죠”라고 말해 회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습니다. “언제는 한국 영화를 사랑해 달라고 말해 놓고 미국 영화를 가지고 와서는… 그런데 ‘밀정’도 있잖아요”라며 자신의 또 다른 출연작을 언급해 다시 한 번 웃음을 줬죠. 연기로는 ‘깔 수 없는’ 배우 이병헌의 또 다른 매력에 감탄했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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