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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효진 Oct 18. 2016

50년차 배우 윤여정, ‘진짜 어른’의 이야기

영화 ‘죽여주는 여자’ 윤여정

“이 영화로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복지부장관도 아니지만… 일을 안 하고도 노인이 빈곤하지 않는 사회가 됐으면 합니다. 얘기가 길어져서 죄송해요.”


최근 열린 ‘죽여주는 여자’의 언론배급시사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 윤여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양공주’ 출신 ‘박카스 할머니’ 소영(윤여정 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사회가 외면한 소수자들의 문제를 집약한 ‘죽여주는 여자’의 주연다운 인사였습니다.


올해로 배우 인생 50년차를 맞은 윤여정에게 노인 성매매 여성 소영을 연기하기란 쉽지 않았을 듯합니다. 그러나 그는 “저는 간단한 사람이라, 이재용 감독하고 오래 알았고, 몇 편 영화를 같이 했고, 그래서 시나리오를 보냈기에 ‘누구보고 하라고 보냈겠어?’라는 생각에 별 고민 없이 시작을 했어요. 하다가 후회는 했지만요”라고 시원스레 말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여자 이야기를 잘 하는 이재용 감독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느껴졌습니다.



촬영한 것을 후회했다는 그의 말에, 도대체 어떤 대목에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이에 윤여정은 “성매매 장면을 찍을 때요”라고 즉답했습니다. “이재용 감독은 디테일이 강한 분이잖아요. 보는 사람은 그게 아름답고 리얼할 텐데, 당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힘들답니다”라고 덧붙이며 웃기도 했죠. 그러면서 “그런 일(?)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대본에 입각해서 연기를 했는데, 그걸 지적하더라고요. 주사를 놓을 때 그렇게 놓으면 안 된다, 이렇게 해야 된다면서요. 간호사가 하는 것 보니까 진짜 그렇더군요. 그래서 뛰쳐 나가고 싶더라고요. 또 찍으라는 거예요. 인간이라는 게, 당할 때는 목을 졸라 죽이고 싶더라고요”라고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이 밖에도 극 중 직업상 성애 장면에 사람을 죽이는 대목까지 연기해야 했던 윤여정은 “그 건 여러분이 상상해도 얼마나 힘들었을지 아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영화나 텔레비전 나오는 사람들을 감정 노동자라 생각했는데, 이 건 극한 직업이구나 싶었죠”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엔 조금 우울해지고 힘든 환경이기는 했죠. 이야기하기 부끄러운데, 이렇게 나이 들어서도 배우가 경험한 일만 하진 않잖아요. 모르고 죽었음 좋겠다 싶은 세상도 있고요. 경험하지 않고 싶은 모르는 세상까지 알려주셨기 때문에 (이재용 감독에게)굉장히 감사해하고 있어요”라는 것이 윤여정의 소회였습니다.


늘상 윤여정과 만날 때면 그 시니컬한 말투 속에 담긴 깊은 생각에 놀라곤 하는데, 이번 역시 그랬습니다. 노인은 있어도 ‘진짜 어른’은 적은 요즘 윤여정은 믿을 만한 어른의 모습이었죠. 50년 배우 인생 전에 없던 도전을 하면서까지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일지, ‘죽여주는 여자’를 보며 생각해 보시는 것도 좋을 듯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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