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by 나효진

여행을 끔찍히도 귀찮아 하는 나지만 일본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모두가 그랬듯 미취학 아동 시절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을 봤고, 국민학생에서 초등학생이 됐을 적에도 일본 만화와 소설에 심취했다. 일본 드라마와 영화에도 손을 댔다. 아이돌과 배우, 음악도 줄곧 관심을 뒀다. 어느 새 방구석에서도 벅차도록 일본을 즐길 수 있는 세상이 됐지만, 그럼에도 이 나라는 직접 가 보고 싶은 곳이었다.


10년 전, 첫 해외 여행지로 일본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래서였다. 도서관에서 여행 책을 잔뜩 빌려다가 연구를 하는 귀여움이 있던 때였다. 몇 번이고 돌려봤던 드라마 I.W.G.P.의 배경인 이케부쿠로 니시구치 코엔을 직접 밟으며 울컥했고, 지브리 뮤지엄에서 환희를 느꼈다. 시부야의 스크램블 교차로를 걸으면서는 일본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느긋하게 머물기 보다는 궁금했던 곳들을 성지순례하듯 찍고 다음 장소를 찾기 바빴다. 바쁜 3박 4일이 훌쩍 지났고, 나는 그 정도로 일본을 볼 만큼 봤다고 생각했다.


그 후 나는 단 한 번도 해외 여행을 떠난 적이 없다. 국내조차 가족끼리 휴가차 떠나는 여행 말고는 움직이지 않았다. 누군가는 어학 연수를, 누군가는 워킹 홀리데이를, 누군가는 방학마다 여행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을 때도 나는 그저 심드렁했다. 심지어 친구들이 나이 제한에 맞춰 바삐 내일로 여행을 다닐 적에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어디론가 떠난다는 것은 광역버스를 타고 서울에 가는 정도였다. 그만큼 여행이란 내 인생에서 그다지 필요치 않은 이벤트였다. 20대의 나는 영화나 드라마가 주는 간접 경험에 깊이 천착해 있었고, 겁도 많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곳에 떨어졌을 때의 리스크를 감당하고 싶지 않았고, 큰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지난 2015년 말의 여행은 몹시 즉흥적이었다. 당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 직장에서 새 출발을 준비하고 있던 나는 지인의 결혼식 뒷풀이 자리에서 친구들과 일본 여행을 도모했다. 가장 가깝고, 만만하고, 하룻밤만 자고 와도 아쉽지 않을 동네가 일본이었다. 가도 좋고 안 가도 그만인 기분이었다. 다만 그때 함께 있던 친구들과 처음으로 멀리 떠난다는 것이 설렜기 때문에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스물 아홉의 끝자락이었다.


하네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놀랍도록 가슴이 뛰었다. 그간 여행을 싫어한다 말했던 것이 무색하도록 행복감이 밀려왔다. 다시 한 번 찾은 이케부쿠로 니시구치 코엔이 변해 있는 것을 봤을 때는 우리 동네 단골집이 없어진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단 33시간의 체류였고 어마어마한 사건이 발생한 것도 아니었지만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나를 강하게 끌어당겼다.


그런 감정들이 남은 상태에서 한국에 돌아와 일을 하고 있자니 나한테도 휴가라는 것이 주어졌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문득 혼자 여행을 가고 싶어졌고, 자연스럽게 일본이 떠올랐다. 우선 사람이 많은 곳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데다가 여름의 일본은 최악이라 여겨졌기 때문에 남들이 휴가를 갈 시기는 피했다. 10월 말부터 11월 초로 10일 동안의 휴가를 얻어 놓고 나니 혼자서 처리할 게 무척 많았다. 우선 여권을 새로 만들어야 했고, 비행기표 알아보기부터 숙소 잡기까지 당연히 전부 나의 몫이었다.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에어비앤비에서 꼭 자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여행은 살아 보는 거야'라는 문구가 매력적이었던 걸까. 그렇게 8월부터 모든 예약을 완료하고 나니 다시 하네다 입국 게이트에서 캐리어를 끌고 나오는 나를 내내 상상하게 됐다. 술도 무지하게 싫어하는 내가 혼술을 계획하기까지 했다. 그 동안 하루 일과를 늘 빽빽하게 짜고 자신에게 엄격하게 굴었던 내게 조금의 쉴 틈을 주는 여행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어디서 몇 시에 뭘 먹고, 뭘 사고가 아닌, 스스로에게 인색하지 않은 나날을 보내기 위해서. 나는 떠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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