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F Aug 22. 2022

모두 똑같이 회사를 다녀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29살 공공기관 대리의 퇴사일지 07


여느 날과 같이 조직에 지쳐있던 작년, 무언가 제도를 신청하려고 하자 냉큼 앉혀놓고 훈수를 더라.(물론 인사규정에 버젓이 있는 제도를 신청하려 했다.) 골자는 조금만 더하면 승진할 텐데  참으라는 . 도돌이처럼 이어지는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는데,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 어려서 괜찮다고, 별로 개의치 않는다고 답했다.


그냥 분위기 환기 겸 갔던 카페 자랑하는 사진


그러자 그들이 물었다. 몇 살이냐고. 그래서 스물여덟이라고 답했더니, 납득하지 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마음속에 조용히 앉아있던 호승심이 불쑥 일어섰다. 그들처럼 살지 않아야겠다. 나이가 몇 살이 되어도 (물론, 스물여덟이면 무엇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이다.) 살고 싶은 대로 살 거라고 다짐했다. 저들처럼 틀에 갇혀서 편협한 시선을 가지지 말아야지.


성실히 살아가는 이는 멋있지만, 자신의 틀을 남에게 씌우려는 이는 너무 볼품없다. 자기들이 그렇게 산다고 모두가 자신들과 똑같이 살아야 하는 건 아닌데, 전혀 이해하지 않으려는 자세. 모두가 자신처럼 살기를 바라는 마음.


일종의 장면 전환 장치


이것은 일종의 결핍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내가 사직서를 내고 다른 길을 간다고 해서, 조직원들의 인생을 깎아내리지는 않는다. 오히려 현실에 중심을 잡고 사는 모습을 멋있게 생각한다. 다들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서 삶을 선택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니까. 모두의 가치관은 다르니까.


하지만 그들은 마치 '자신들이 용기 내지 못했던 순간과 조직에 바친 시간'을 후배 직원들에게서 받아내려는 것 마냥 행동한다. 후배들이 다른 길을 찾아서 나가는 걸 폄하한다. 심지어 어떤 과장은 후배들을 모아둔 자리에서 '나갈 거면 빨리 나가라'는 말을 했다. 그 말을 들으면 열심히 일하던 사람도 기분이 상할 것이다. 서로 도우며 일해도 모자란 판국에, 자기가 회사의 주인인 양 착각하는 것 같다. 다들 길게는 몇 년의 취준 끝에 들어온 직장인데, 처음부터 그만두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왜 그만두는지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 아닌가. 다 같은 노동자끼리 날을 세우는 모습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무서웠다. 몇 년이 지나면 나도 저렇게 되는 건 아닐까. 내가 바라는 미래의 내 모습은 그곳에 없었다. 오랜 시간 숙고한 끝에 사직서를 낸 이유 중 하나이다. 물론, 이제부터는 미래를 스스로에게만 의지해야 할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부담을 회사와 나누지 않고 온전히 책임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행복한 길을 가고 싶었다. 나는 도전을 좋아하니까, 앞으로의 길은 아마 즐거울 거다. 차근차근 내가 원하는 나의 미래를 완성해 가야지.



일단, 요즘 나의 목표는 '여유로운 사람 되기'이다. 지금은 회사 생활 끝에 역치가 한참 낮아져 있다. 내가 견딜 수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역치가 낮아져서, 조그만 일에도 화가 불쑥 나고 피로해진다. 웬만한 일은 웃어넘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대부분의 일은 그렇게 큰일이 아니니까. 세상 살면서 해결할 수 없는 일은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이번 백수 생활을 통해 여유를 얻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이전 06화 퇴직금 활용법 : 런던행 비행기표를 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