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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F Sep 16. 2022

자유수영 갔는데 생존수영이 된 이야기

백수는 처음이라서 01


10편의 퇴사 일지를 마무리하고, 이제 백수 생활에 대하여 적어본다.
오늘의 주제는 백수의 자유수영이다.


때는 6월, 갑자기 수영을 하고 싶다며 장비를 마구 사들였다.


나에겐 장비병이 있다. 매우 심하게.


그래서 무려 두 세트로 장만한 수영복!



왼쪽은 초보일 때 입을 수영복이고, 오른쪽은 성장하면 입을 수영복이다. 이럴 때는 누구보다 계획적인 사람. 아무튼 이렇게 잔뜩 장비를 구비해놓았는데! 그쯤 코로나가 재확산된다는 뉴스가 잔뜩 쏟아져 나왔다. 알아주는 쫄보는 수영 수업을 취소하였다. 그렇게 퇴사에 뭐에 일들이 겹치고 겹치다 보니 9월이 다 되었다. 백수로 빈둥빈둥하면서 운동은 하나도 안 하고 지내던 나날이었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서 구석에 박혀있던 수영복을 꺼내었다. 잔뜩 구겨진 수영복을 보아라. 깊숙이도 넣어두었나 보다.


원래는 수영 수업을 들으려 했는데 아무리 봐도 성실한 출석이 어려울 것 같았다. 자유수영 10회권의 유효기간이 3년이기에, 냅다 결제해버렸다. 어렸을 때 무려 접영까지 마스터한 사람으로서 충분히 자유수영이 가능할 거라는 오판과 함께였다. 누가 날 좀 말려주지... 하지만 누가 말린다 해서 들을 사람도 아니다.



그렇게 호기롭게 자유수영을 하러 수영장으로 향했다. 그렇다, 형광 네온 수영가방도 샀다. 뭐 하나 안 산 것이 없다. 걸어 다니는 만물상이다, 내가.


수영복으로 갈아입는 것부터가 고난이었다. 요즘엔 실리콘 수모를 쓴다고 하길래 냉큼 메로나 색 수영모자를 구매했었다. 예쁜 수모는 내 말을 도무지 들어먹지를 않았다. 물을 가득 채우고 머리 위로 써야 한다는데, 물벼락만 여러 번 맞기 일쑤였다. 겨우 수모를 장착하고 수영장에 입장하였다.


아주머니들이 몸을 풀기에, 나도 따라서 스트레칭을 한껏 해주었다. 심장에 물도 찹찹 뿌려주었다. 그렇게 요란을 떨고 자유수영 레인에 입장하였는데,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물이 좀 무섭게 느껴졌다. 얼굴 담그기가 두려워서, 자유형 팔 동작이 전혀 구현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킥판을 가져왔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이상은 정유인 수영선수였는데 현실은 개헤엄도 어려워서 킥판과 함께하였다. 킥판 잡고 한 바퀴 돌았을 때쯤, 옆 레인 수영강사님이 등장하였다. 호루라기에 맞춰서 도둑 스트레칭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강사님이 킥판을 쓰면 안 된다고 하셨다... 그때부터 처절한 생존수영이 시작됐다.


얼굴을 물에 넣는 게 무서워서인지, 거꾸로 하는 배영과 고개를 들고 하는 평영은 곧잘 흉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평영은 많은 힘이 필요하다. 그래서 배영을 선택했고, 자유형 행렬 사이에 끼인 배영 쭈구리가 탄생했다. 혼자 꿋꿋하게 배영으로 열심히 랩을 돌았다. 돌다 보니 팔 동작도 힘들어져서 반절은 팔을 사용하고, 반절은 발만 사용했다. 위에서 보던 이들은 저게 수달이지, 사람인가 싶었을 테다.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수영장에서 혼자 출구로 향하기란 여간 민망한 것이 아니다. 수업 시작과 끝 시간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 길을 걷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물불 가릴 때가 아니었다. 같이 자유 수영하던 사람들은 당연하게도 한 바퀴를 쉬지 않고 돌았지만, 나는 한 랩마다 쉬어야 했다. 그렇게 땀과 눈물로 16 랩을 채우고 허겁지겁 도망 나왔다. 그런데도 칼로리 소모량은 치사하기 이루 말할 수 없다.


집에 와서 저녁 9시쯤 기절하듯이 잠들었다. 잘 때도 몸이 아팠고... 다음날도 몸이 아팠다. 날갯죽지에서 날개가 날 것처럼 근육이 땅겼다. 3년에 10회... 만만하게 보고 신청했는데, 과연 유효기간 내에 다 소모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일단 다음 수영은 주말에 가기로 결정했다. 어린이들 사이에 끼어서 킥판을 좀 잡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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