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엄마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까, 머릿속으로 계속 생각을 해보았다.
결혼 생활부터 쓰자니 책 두 권이 훌쩍 넘을 것 같아서 첫째를 낳고 난 후의 이야기부터 써볼까 한다.
한 없이 다정했던 나의 전 남편. 웨딩촬영을 하러 갈 적에 같이 차를 타고 가는데 조수석에 앉아있는 나에게 눈을 떼지를 못해 입고 있던 셔츠의 오른쪽 깃 안쪽에만 묻었던 때가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만 27세가 되었을 때 첫째 아들이 태어났고, 그는 그쯔음부터 변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본인 생각으로는 아빠로서의 역할을 다 해내기 위해서였겠지라고 이해해보려 한다.
조그마한 아파트에서 살았던 (여기 아파트는 세탁기를 공용으로 쓴다) 우리는 조금 여유 있었던 시댁에서 여기서는 아기를 못 키운다며 괜찮은 타운하우스를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하시며 서둘러 집을 찾으셨다.
급히 찾은 집이지만 꽤 괜찮아서 경쟁자들이 많을 거라 예상하고 웃돈을 더 주고 그 집을 구매했고, 첫째 아이 예정일 3주 전으로 이사 날짜를 잡았다.
이사를 하며 무리했는지 이사 다음날 아침 양수가 터졌고, 애기 옷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로 난 병원에 갔다.
3주 빨리 나온 아기라 작아서 그런지 그리 힘들지 않게 출산을 한 나는 캐나다에서 출산을 했던 터라 친정엄마께 제일 먼저 우리 아들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소중한 아이를 꼭 안고서는 폰을 찾아 엄마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엄마는 전화를 받자마자 괜찮냐며 나를 걱정했고, 전 남편은 아이에게 전자파가 안 좋으니 빨리 끊으라며 닦달을 했다.
서운하고 속상했지만 그래도 이해했다. 그렇겠구나.
서운한 것만 생각하기에는 내 소중한 아들이 너무 신기하고 예뻤다. 그 순간에만 집중했다.
저혈당인 아들에게 캥거루케어가 제일 필요하다고 출산 5시간 후에 잠든 나에게 아기를 안고 있어야 한다며 화내는 남편의 말이 너무 슬퍼서 엉엉 울었지만, 그래도 아들이 있어서 옆에서 내 편이 되어주는 시어머니가 계셔서 금세 괜찮았다.
내가 좋아 선택한 캐나다, 내가 좋아 선택한 연애 그리고 결혼, 내가 좋아 낳은 아기였으니 내가 책임져야 했다. 늘 그래왔었다.
한국과 달리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모자동실이라 난 그렇게 하루 꼬박 저혈당인 아기를 안고 먹이며 속상할 틈도 없이 병원에서의 첫날밤을 지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