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가드닝클럽 공유정원 이야기
어느 날 갑자기, SNS에서 키우는 식물이 100개가 넘어간다는 사람의 피드를 보게 된다. 거기서 눈에 띄는 식물의 이름을 메모해둔다. 과습에 민감하지 않은 식물을 첫 식물로 골라서 집에 들여놓았는데 채 2주가 지나기도 전에 죽어버린다. 이유는 모른다. 늘 접속하던 중고거래 앱에 들어가서는 예전에는 관심도 없던 ‘식물 모종 무료 나눔글'에 눈길이 머문다. 다시 몇 개의 식물을 더 들여온다. 슬슬 날이 추워지면 환기를 위해 창문을 열어 두기 어려워질 테니, 다시 들여온 식물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예정에 없던 ‘서큘레이터’를 하나 사 두어야 하나 고민이다. 어디선가 심심찮게 들려오는 레파토리다. 식물과 함께 사는 법을 속성으로 익힌 우리는 여전히 식물집사로서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다. 서울시 동작구 핸드픽트호텔의 가장 상층부에 자리한 그린라이프 플랫폼 ‘공유정원'을 들러볼 때다.
1990년대 후반 뜨거운 사랑을 받았던 후지TV 드라마 <롱 베케이션>에서 피아니스트를 꿈꾸는 ‘세나’(기무라 타쿠야)는 옥상이 있는 3층 집에 산다. ‘미나미’(야마구치 토모코)에게 있어 그 집은 결혼이 예정되어 있던 상대가 말없이 이사를 가기 전까지 살던 곳이다.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된 세나와 미나미는 옥상에 자주 오르고, 불어오는 여름 바람을 맞으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들에게 옥상은 아무 때고 가벼운 마음으로 들를 수 있는 곳이다. 공유정원에 처음 방문한 건 쌀쌀한 늦가을이었지만, 어쩐지 여름의 한 장면을 붙들어 둔 것 같은 <롱 베케이션> 속 세나네 옥상이 떠올랐다. 공유정원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영원한 사랑’ 벽화는 루프탑의 노을에서 영감을 받은 앤드류 햄이 그의 아내를 그린 것이다. 이는,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고개를 들어 자주 바라보던 옥상의 옥외광고판 속 시티팝 LP 커버스러운 편안한 이미지와 ‘Don’t worry, Be happy’라는 메시지를 연상시켰다.
서울가드닝클럽의 이가영 대표는 2018년, 자신의 작업실 옥상을 오픈하며 정원을 꾸렸다. 이곳에 지인은 물론이고 모르는 사람들이 방문하는 걸 보면서, 옥상이 가진 가능성을 보았다. 그렇다면, 집이나 작업실이 아닌 호텔의 옥상은 무엇이 달랐을까? 대개의 호텔 루프탑은 투숙객들이 고층에서 전망을 내려다보게 하는 기능에 충실하다. 이 경우, 이용자의 시선은 자꾸만 바깥을 향한다. 공유정원은 공간 내부의 새로운 쓰임새를 찾고자 했다. 호텔에 머무는 투숙객들에게는 ‘식물'에 대한 각종 니즈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이 유휴공간을 가장 잘 활용해줄 수 있는 이들은 식물에 시간과 비용을 들일 마음을 먹은 이들이 된다. 공간은 고정되어 있지만, 드나들 수 있는 대상의 범위는 더욱 확장되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공유정원이 있는 꼭대기층에 오르기 전에, 이를 떠받치고 있는 건물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한다. 2016년에 문을 연 핸드픽트호텔은 개점 2년만에 영국의 라이프스타일 잡지 <모노클>이 선정한 100대 호텔에 이름을 올렸다. 역사가 짧은 호텔이 빠르게 영예를 얻게 된 덕에, 호기심을 가지고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에 오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났다. 김성호 핸드픽트호텔 대표는 3대째 동작구 상도동에 살고 있는 거주민으로, 지역과 궤를 같이 하는 로컬 호텔을 지향한다. 노량진 수산시장과 지역 재래시장에서 수급한 재료로 호텔 내부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로비는 9층에 있어 투숙 목적이 없는 사람도 자유롭게 1층에 드나들며 신진 예술가의 설치작품을 관람할 수 있게 했다. 데이터가 증명하듯, 2019년 기준 호텔 이용객의 45%는 동작구민이었다.
한편 이곳은, 국내 호텔 중 처음으로 도시 양봉을 시작한 곳이다. 복잡한 도시 안에서 꿀벌이 집을 찾아 헤매는 경우가 많은데, 서초구 논현동의 한 옥상에서 구조한 꿀벌들이 핸드픽트호텔의 옥상 한켠에 정착했다. 최근 ‘기후 위기로 인한 멸종 위기의 꿀벌’이 전세계적인 뉴스 토픽으로 다루어지고 있는만큼, 지금으로부터 6년 전 선행되었던 양봉 프로젝트는 마치 공유정원이 뿌리를 내릴 기본 토양이 되었던 것처럼 보인다. 핸드픽트호텔은 지금까지 꿀 수확행사, 어린이 꿀벌 체험 교실, 도시 양봉가 양성과정 등 다양한 행사를 꾸준히 진행해왔으며, 현재는 공유정원과 ‘어반비즈서울’의 공동 관리 하에 양봉 작업이 지속되고 있다. 이 공간에서 생산된 꿀은 호텔 투숙객을 위한 음료 제조 시 사용된다. 호텔의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제공받는 것은 인간이지만, 상도동에 터를 잡은 건물을 중심으로 생태계의 순환이 이뤄지고 있다.
최근 2-3년 사이의 ‘가드닝’은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비자발적으로 늘어간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취미로서 권장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주로 개인으로서 해봄직한 일이었다. 이론적으로는, 빛과 바람과 물과 흙이 있으면 누구나 자신이 있는 곳에서 식물을 기를 수 있다. 이 중 일부는 한 사람이 하루를 살아가는 데에 있어 필요한 공공재이기도 하다. 식물과 같은 공간을 점유하는 일에 대하여, 이소영 식물세밀화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식물은 내게 관찰과 기록의 대상이기 전에 이 세계에 존재하는 생명인 동시에 함께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가까운 친구이기도 하다. 그래서 식물을 들여다볼수록 그 곁에 선 나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성찰하게 된다.”(이소영 <식물과 나>, p.8) 실내에서 식물을 기르기 시작한 사람은 그것이 단지 같은 자리에 고정된 오브제가 아니라, 나와 같은 공기를 나누어 쉬는 존재라는 걸 느끼게 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이런 순간들은 일종의 정서적 안정감을 전해주고, 때로는 <식물과 나>에서 다룬 철학적 사유로도 뻗어나간다.
공유정원은 가드닝존, 웰니스존, 가드너의 작업실, 꿀벌정원으 로 구획되어 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가드닝존에는 각각의 가드너마다 플랜팅 베드가 분양된다. 이는 멤버십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들에게 주어진 영역이자, 전문 가드너로부터 식물 기르는 법을 배우는 학습을 겸한 것이다. 프로그램 참여자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정원의 이름, 가드너의 이름(개인 또는 팀명), 정원을 가꾸기 시작한 날짜, 심긴 것들의 목록을 기록해둔다. 층꽃나무, 로메인, 무, 타임, 라벤더, 핑크세이지, 애플민트, 박하, 가우라, 무, 등골나물, 층꽃나무, 적로메인 등 무척이나 다양한 종의 식물들이 심겨 있다. 무엇보다, 먹거리 식물과 관상용 식물은 따로 심겨지지 않는다. 하나의 토양 내에서 자란다. 계절에 따라 일조량과 강우량이 다르기 때문에, 공유정원의 담당자들이 필요에 따라 평소에 조금씩 플랜팅 베드를 옮기기도 한다. 한켠에 있는 가드너의 작업실은 2시간 동안 예약제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허브차를 마시며 가드닝 관련 도서를 읽거나, 전문가드너의 1:1 상담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식물 기르는 일을 개인의 취미에서 모두의 일로 확장하면서 ‘공유정원'이 전하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이곳은 선의를 가지고 집에 들였던 식물을 죽여본 적이 있는 경험이 흑역사로만 남지 않도록 다시 한번 도전해보게끔 하는 기회의 장이다. 무엇보다, 설령 식물을 또 한 번 죽이게 되더라도 거기서 너무 비장해질 필요가 없다는 걸 알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전문 가드너의 도움을 받더라도, 플랜팅 베드에 심겨진 다양한 식물들의 성장 속도는 들쑥날쑥할 수 있다. 결과를 두고 성공과 실패를 이분법적으로 판단하는 일 대신, 이전보다 더욱 책임감이 늘어나는 삶을 경험하는 편이 더 중요하다. 이것이 예비 가드너들이 유료 멤버십 프로그램에 가입을 결심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6주의 시간을 들이는 만큼, 책임감 있게 다른 존재를 기르고 돌보는 태도를 배우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모인다. 그리고 마치 담장이 낮은 이웃집처럼, 다른 플랜팅 베드에서 자라는 식물들을 함께 바라보게 된다. 덕분에, 자신이 기르는 식물의 성장 속도에만 매몰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자신이 스스로에게 요구해왔던 성장에 대한 문제 또한 더욱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도록 만드는 효과로 이어진다. 결국, 공유정원을 거쳐 나만의 공간으로 들여올 이 다음의 식물들 또한 큰 생태계의 일부라는 걸 늘 기억할 수 있게 된다. 그린라이프는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 낼 수 있는 게 아니므로, 오늘의 식물집사는 순환하는 생태계를 떠올린다.
- 글. 서해인 에디터/공간 사진. the blank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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