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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멘트 May 06. 2019

그리하여 그들은 사막으로 갔다

덜 갖고, 더 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

지금으로부터 약 5년 전, 브라질 상파울루에 잠시 거주할 때였다. 어느 주말, 그래피티와 예쁜 거리로 유명한 Vila Madalena라는 동네에 들렀다가 해질녘 즈음 한 카페에 들어갔었다. 그 카페는 옥상 테라스 자리가 가장 인기가 많아서 나도 조용히 테라스 위로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곧 낯선 광경이 펼쳐졌다. 해가 막 떨어지는 그 순간을 기다렸다가 그 옥상에 있던 모든 브라질 사람들이 갑자기 일어나서 하늘을 향해 박수를 치며 해에게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닌가...

그 장면이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다.




누군가가 나에게 칠레의 자연 대해 한 마디로 정의해보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정의할 것 같다.

                               '사막부터 빙하까지 볼 수 있는 나라.'


전 세계 여행객들이 주로 많이 찾는 아타카마 사막보다 더 북쪽에 위치한 Iquique의 도시에 도착해서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이었던 패러글라이딩을 하고 난 뒤, 서둘러 숙소로 향했다. 사막에서 저녁 운전은 피하는 것이 좋다. 도로가 깔려 있긴 하지만 해가 지고 나면 자동차 전조등 이외에는 딱히 의지할 수 있는 빛이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가도 가도 풍경이 똑같아 2시간 전 풍경과 지금 풍경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 그래서 자칫하다가는 시공간에 대한 감각 자체가 흐려지기도 한다. 사람도 많이 없어서 그런지 유난히 교통사고 사망자도 많고, 괴담도 많고, 오랜 시간 풀리지 않는 미궁의 미스터리한 사건들도 많은 곳이 사막이다.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의 풍경

숙소는 그런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해안가를 등지고 아르헨티나 쪽 방향으로 한 시간을 넘게 차로 가다 보면 드문 드문 자동차들이 보이다가 다시 한 동안은 뜸하다가, 아주 작은 동네가 나왔다가 그 동네를 지나서 조금 더 가다 보면 인적이 거의 없는 곳에 이르게 되는데, 내가 막 도착한 그때는 이미 해가 하늘에 조금 남아있던 마지막 남은 빛까지 모두 싹싹 끌어가며 사라지고 있었다.


숙소 대문 앞, 나무판자로 만든 도착을 알리는 표지판

그렇게 차로 달려 도착한 곳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그 공간은 자연과 인간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접점을 찾아 인간이 뿌리를 내린 곳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사람이 큰 불편함 없이 '지속 가능하게' 생활하는 데에 필요한 것들을 자연도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아주 최소한의 영향만 끼치는 선에서 사람의 손을 통해 만들었다는 느낌이 그 공간의 아주 작은 소품 하나에서도 느껴졌다.


막 방에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왔는데 주인 부부가 나를 이끌었다. 마당 한 군데에 딱 두 그루의 나무 사이로 드넓은 하늘이 한눈에 보이는 spot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지만 마치 photo zone처럼 무언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을 풍기는 위치였다. 그들이 내게 말했다.


                     "40분에 정확히 여기 보이는 이 나무 사이로 달이 뜰 거야."


오늘 뜨는 달도 보름달이니 그전까지 하늘에 쏟아지는 별들을 실컷 봐 두라는 거였다. 그들은 매일 달이 뜨는 시간을 알고 있었다. 어제 달이 떴던 시간을 알고 있었고 내일 달이 뜰 시간도 알고 있었다. 사막은 다른 곳보다 달이 훨씬 더 크게 보인다는 사실을 그들 덕분에 알았고, 그 덕분에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 앞에서 엄청난 크기의 달이 서서히 나타나서 하늘로 두둥실 떠오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모두 지켜볼 수 있었다.

(좋은 카메라가 있었다면 그 광경을 사진으로 여기에 공유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ㅠㅠ)


집주인 부부와 함께한 와인 한 잔

  

집주인 부부는 칠레 여자와 페루 남자 커플이었다. 그들과 밤에 와인 한 병을 나눠 마시며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여자는 디자이너(인테리어와 정원 디자이너)로, 남자는 고고학자로 지금까지 살고 있지만, 이 사막으로 오기 전까지는 평생을 페루의 리마와 칠레의 산티아고, 즉 대도시에 근거지를 두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문득 든 몇 가지 생각들이 있었단다.

'소음이 0이 된 완전한 정적 속에서 살아본 적이 언제였는지,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순간들을 얼마나 주의 깊게 보고 살고 있는지,
내가 매일 마시는 공기의 대부분이 먼지와 매연은 아닌지,
자연에 너무 많은 상처를 주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이 모든 것을 감수하면서 살 정도로 나의 도시에서의 삶이 내게 중요한 것인지..'


'그렇지 않다'라는 내면의 소리가 커졌을 때쯤 그들은 도시에서 소유하고 있던 모든 집, 차, 여러 가지 살림살이 집기들 등을 모두 팔아버리고 사막으로 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텐트만 있는 Eco 캠핑장으로 시작해서 그곳으로 오는 사람들이 자연에서만 얻는 에너지로도 충분히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들의 철학을 공유하는 플랫폼으로 그곳에서의 삶을 시작한 것이 벌써 근 20년 가까이 되어, 이제는 에코 캠핑장과 함께 에코 B&B등으로 확장이 되었다.

   

내가 묵었던 방. 모든 것을 태양열과 자연으로부터 얻은 것들로 직접 만들었다.

잠깐 대화가 멈추었을 때는 여김 없이 순도 100%의 정적이 우리를 휘감았다. 밤하늘에는 별똥별들이 심심할만하면 하나씩 떨어지고 있었다. 별똥별을 보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어렸을 때 들은 적이 있었는데 하도 많이 떨어지니 이렇게 많은 소원을 빌어도 될지 혼란스러워지기 까지 했다.


집주인 부부의 생활공간


왼쪽: 집주인부부의 야외 작업실  오른쪽: 그들의 애완동물, 라마(llama)

그렇게 흥미로운 대화와, 그 사이사이를 밀도 있게 채웠던 정적과 달, 별, 사막의 공기가 공존했던 사막에서의 첫 밤이 지나고, 다음날부터 해가 뜨겁고 건조한 사막의 하루가 시작되었다.

   

숙소 바로 뒷 풍경

이 곳의 풍경들을 보고 있자니 그들의 결심이 한층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 세상 많은 사람들처럼 대도시에서 수많은 사람들에 치이고, 밤낮으로 쏟아지는 이메일들에 치이고, 거리의 매연과 담배냄새, 마리화나 냄새에 코를 틀어막고 다니며, 자기 전까지 신경이 곤두서 있어서 피곤한 삶을 살고 있다면, 그들이 삶이 한없이 편하기만 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었으나, 감내해야 하는 삶의 피로함은 나의 그것과 질적으로 차이가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를테면, 자연과 공존하기 위해 겪어야 했고, 아직도 겪고 있는 수많은 시행착오들과 자연이 쉽게 허락해주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인내심과 그리고 포기도 할 수 있는 이해심. 그런 것들 말이다.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소금 호수. @Salar de Huasco

그래서 오히려 대도시에서의 삶이 피곤하고, 자연 속에서의 삶이 무조건 좋아 보였 다기 보다도, 그들을 통해 내가 늘 갖고 있었던 생각인 '덜 갖고도 더 충만한 삶'은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들이 내게는 그러한 삶에 대한 산 증인과 마찬가지였다.


회사에 들어가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내가 살고 싶은 삶과는 거리가 먼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알 수 없는 책임감과 사회에서 이탈될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꾸역꾸역 살지 않아도, 또 그 반대로 내 선택에 의해 그런 삶을 산다고 해도, 결국 자연은 우리에게 선택 가능한 모든 옵션을 제공하고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서 나의 현실에 불평하기보다는 언제든 자연은 우리에게

'피곤하고 지치면 언제든지 내게 돌아와'

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고, 조금 더 자연과 거리를 가까이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훨씬 덜 외롭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여행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막으로 갔다. 100%의 정적을 느끼며 살기 위해, 해와 달이 뜨는 순간들을 더욱 의식적으로 관찰하는 삶을 살기 위해, 자동차 매연 대신 아침에는 코가 시릴 정도로 찬 공기와 낮에 모든 것을 태워버릴 것 같은 뜨거운 공기를 마시기 위해, 자연에 더 이상은 상처 주지 않고 자연과 공존하기 위해..

그렇게 그들은 사막 한가운데에서 몸은 더 가벼워졌을지 언정, 마음만은 더 충만한 삶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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