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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멘트 May 26. 2019

정규직은 싫은데요

직업에 대한 다른 생각들

브런치에 처음 가입할 때 직업란을 채우며 한참을 고민했었다. 

내 직업은 뭘까.. 

회사원? 식품 계열 MD? 

남미시장 전문가? 스페인어 통역가? 

프리랜서? 작가? 콘텐츠 크리에이터? 

앞의 두 개는 사회가 내게 부여한 직업일 것이고, 그 아래에 두 개는 내가 업무를 하며 실제로 느끼는 내 직업이며, 마지막 아래 세 개는 내가 앞으로 갖고 싶은 직업들이다. 나는 결국 현재의 내 직업과 미래의 내가 가질 직업들을 대충 섞어서 '독립적 자연인 회사원'이라는 다소 어색한 직업을 적어 넣었다. 


'독립적 자연인 회사원'이라는 이상한 타이틀에서 뒤에 '회사원'을 빼기 위한 고민은 꽤 오래 했는데 실제적으로 정말 그 타이틀을 내 일상에서 완전히 지워버릴 수 있는 대비는 많이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약 2주 전 예상치 못한 어느 날, 내 발걸음은 내 상사의 사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갑작스럽게(내게는 전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었지만) 퇴사 이야기를 꺼내는 내게 당황해하며 법인장은 장장 2시간에 걸쳐 내 결정이 얼마나 미숙하고 즉흥적인 결정인지, 온갖 부정적인 상황 속에서 내가 도출해 낼 수밖에 없었던 큰 판단 실수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그리고 마지막에 내게 말했다. "오늘 이야기는 못 들은 걸로 할 테니 다시 마음 가다듬고 나중에 이야기해요."    


그렇게 약 일주일이 조금 넘게 지난 그저께 나는 다시 법인장 사무실에 가서 이야기를 했으나, 결국 또 한 번 2시간에 걸쳐 내 판단이 얼마나 어리석은 판단인지, 지금 회사를 나가게 되면 내 인생은 앞으로 내리막길이 될 것이 뻔하며 앞으로 다시 이런 커리어를 갖게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배가 될 것이며, 내가 지금까지 쌓은 경험과 커리어가 너무너무 아깝다고, 거기에다 더해서 온갖 달콤한 제안들을 받았다.  


회사 입장에서도 나를 잃는 것은 큰 손해이기 때문에 인사팀과 이야기해서 이번 연말까지라도 채우고 돌아가면 바로 fast track으로 승진해서 한국 본사에서 좋은 자리로 배정을 해주겠다, 지금 연봉에서 몇 퍼센트를 인상해주겠다 등등... 이 상황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내가 빠졌을 때 큰 업무 공백이 생길 것에 대한 걱정과 나를 생각해주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했고 또 고마웠지만 그 모든 제안들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랬다. 


"감사하지만, 저는 그런 거 관심 없는데요.." 진심이었다. 

    



현실을 모르는 배부른 소리라고 할지 모르겠다. 누구든지 일이 좋아서 직장을 다니는 게 아니라고, 그리고 직장에 다니고 싶어도 취직조차 어려운 상황 속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왜 우리는 정규직에 그리도 목을 매는지 한 번쯤은 회의적으로 생각해봐야 할 시대적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왜 당신은 정규직을 원하는가?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 그 '안정적인 삶'이라는 기준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정규직은 진정으로 안정적인 삶을 가져다주는가? 안정적인 삶을 가졌다고 가정했을 때 그것이 우리의 삶을 충만하게 해 주는 것과 얼마나 큰 관련성이 있는가? 


나 또한 한 때 '정규직 = 안정적이고 좋은 직업', '비정규직 or 프리랜서 = 불안정하고 일시적인 직업'이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래서 모두가 그렇게 원하는 정규직으로 대기업에서 일을 해본 후 얻은 나의 결론은, '나는 정규직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람마다 동기부여를 느끼는 순간과 상황, 일을 해나가는 방식은 모두 다른데 모두가 일률적으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9시 출근, 6시 퇴근하는 틀 속에서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미 Netflix 등을 포함한 수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전례 없었던 유연한 휴가 제도와 출퇴근 제도를 자신들의 기업문화로 도입하고 있는 것만 봐도 이 시대는 큰 변화의 흐름 앞에 서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꽤 아날로그적인 사람이다. kindle은 사놓은 지 1년이 넘었으나 아직도 종이책이 너무나 좋다. 잘 찍은 사진과 영상을 보는 것은 참 좋아하지만 내가 직접 무언가 작업을 하는 것은 아직도 어색하고 아직도 나는 그저 이렇게 글을 끄적거리는 것으로 늘 대리만족을 하고 있다. 유튜브를 비롯한 각종 SNS의 부정적인 측면은 일단 제쳐두더라도, 그러한 플랫폼들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과거부터 우리가 그 '안정적인 삶'을 살기 위해 그토록 염원했던 키워드들, 이를테면, '정규직', '대기업', '공무원', '공사' 등의 이제는 다소 쓸모 없어진 키워드들에서 조금은 벗어나, 한 개인의 취향과 사고방식을 존중하는 존엄성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 일 것이다. 


나의 관심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그리고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이 있는가? 그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정규직'에서 벗어나서도 충분히 잘 먹고 잘 살 수 있다. 


마음대로 살고 싶다면 한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에 관련된 주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 그걸 실현시키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얼마든지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도 잘 살 수 있다.

                                                                            - 테라오 겐, <가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법으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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