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집으로
스물 하나부터 나는 집을 떠났다. 중간중간 집에 돌아와 지내는 시간도 있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또 떠나고, 잠깐 돌아왔다가도 다시 떠나고를 반복했다. 그것이 나의 20대였다. 자꾸 돌아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마치 내가 꽤 글로벌한 사람이라도 되는 줄 알았고 마치 나의 꿈도 그래야 할 것만 같았는지 나의 장래희망은 '세계를 누비는 능력 있는 커리어 우먼'이었다. 어떤 커리어를 쌓느냐에 대한 고민보다는 그저 유능하고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더 클 정도였으니, 나는 나를 진정으로 행복하게 하는 일보다는 그저 인정받는 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부단히 도 애를 썼던 것 같다. 그렇게 스물아홉이 되었고, 나는 나의 20대를 채워나갔던 일상을 모두 접어버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유는 꽤 간단했다. 엑셀과 보고서 작성보다는 요리를 잘하고 싶었고, 답답한 정장보다는 흙과 나무를 닮은 편안한 옷을 입고 싶었으며, 자극적인 음식이 대부분이었던 잦은 외식보다는 땅에서 직접 키운 음식을 먹고 싶었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좋았지만, 백 명의 사람들과 소통하기보다는 열 명과 더 깊은 관계를 만들고 싶었고,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낯섦보다는 지지고 볶는 일상이더라도 익숙하고 편한 한국에서의 생활이 그립기도 했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온 요즘은 일어나서 내 손으로 아침을 만들어 먹은 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정원에 나간다. 사람들은 흔히 백지에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 어렵다고 하는데, 정말 어려운 것은 이미 꽉 차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미 정원을 뒤덮고 있던 무섭게도 무성하게 자란 나무와 꽃, 그리고 무엇보다 끝없이 퍼져버린 잡초와 칡들이 가득한 정원을 가꾸려면, 일단 제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자라 버린 나무와 풀들을 뽑고, 잘라주는 일부터가 급선무다. 정원에서 쓰는 연장들도 처음 보는 것들 투성이지만, 일주일간 매일 조금씩 시간을 쏟았더니, 벌써 정원 사이사이로 사람이 지나다닐 수 있는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역시 자연은 정직하다.
예전에는 컴퓨터로 이것저것 보느라 밤이 깊숙해져야 겨우 잠이 들고, 또 아침에는 출근 때문에 일찍 일어나 늘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으로 인해 경미한 두통으로 하루를 시작했다면, 요즘에는 신체적으로 힘들다 보니 10시면 골아떨어지고 또 아침 해가 뜨겁게 뜨기 전에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오전에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예전에는 퇴근을 하고 집에 와도 일이 끝난 것 같지 않았지만 이제는 하루에 한 일이 눈에 보이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다.
그렇지만 이런 작은 행복들 조차 온 힘을 다해 쟁취해야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아는가. 그간의 경력과 연봉을 포기한 대가가 고작 이건 가라는 회의감과, 매일 아침 도시로 출근하다가 햇빛 아래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잡초를 뽑고 있는 스스로에게 조바심이 전혀 나지 않는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래도 내가 다시 이 곳, 모멘트로 온 이유. 그 순간들, 언제 생각해봐도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그런 찰나의 멋진 순간들을 더 많이 만들고 싶기 때문. 그리고 그 순간들을 다른 사람들과도 공유할 수 있게 되기를. 확고한 무언가에 대한 간절함과 열망은 다른 어떤 그럴듯해 보이는 꿈과도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 다시 찾은 새로운 나의 꿈이 작지만 결코 작지만은 않다고 믿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