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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멘트 Apr 06. 2021

지금 당신, 조바심만 내고 있다면

"진실은 언제나 거기에 있는 법이죠"

스무 살, 상상 속 나의 삼십 대는 아마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바랐던 그것과 비슷할지도 모르겠

내 일을 능숙하게 해내며 거뜬히 밥벌이를 해내고, 멋진 취향을 갖고 있는 성공적인 사회인. 회사와 상관 없이 독립적으로 나의 일을 꾸려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춰서 젊었을 때부터 경제적, 시간적 자유를 누리는 여유 있는 사람. 사실 그 정도는 그냥 매일 열심히 살면 주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막상 삽십대가 되어 그 '성공적인 사회인'이라는 틀에 맞는 사람이 되려고 애쓰다 보니 한 가지 깨달은 아이러니한 사실이 있었다. 내가 바랬던 그 모습은 내가 그것이 되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더 멀어진다는 것.  


한참 핫했던 미드, 체르노빌을 최근에서야 봤다. 역사상 최악의 원전사고에 대한 스토리는 암울했지만 35년 전 세상 저 건너편에서 일어난 엄청난 재앙에 이르기까지의 실제 있었던 단계별 과정과 그때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이 내렸던 결정들은 왜 지금의 내가 스스로에 대해 조바심만 내고 있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려주는 듯했다.


척하기의 위험성

소련과 미국이 각각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표방하며 한참 이념 전쟁을 하고 있었을 때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에서 터진 원자력 발전소 사고. 사고 당일 이미 엄청난 양의 방사선 피폭으로 인해 작업자들은 죽어나가고 있었지만 정작 무고한 희생자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실질적 힘을 갖고 있었던 국가의 리더들에게는 의 실수가 전 세계로 흘러나가면 소비에트 연방의 위상이 떨어지고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뒤떨어질 까에 대한 걱정 아래, 각자의 자리 지키기가 가장 중요한 미션이었다. 그래서 하나같이 다 '~척 하기'에 들어갔다. 핵폭발 사고가 아닌 그저 가벼운 화재사고인 척, 방사능 수치가 위험 수준이 아닌 척, 실제보다 피해가 훨씬 적은 척, 내 잘못이 아닌 척... 그 척하기의 결과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다시피 참혹했다. 


진실을 직시하지 못했을 때 치러야 할 비용

사고 자체로도 대재앙이긴 했으나 문제를 걷잡을 수 없이 증폭시켰던 주요 요인은 사고 후 실제 상황을 인지하지 않으려고 하고 진실을 보려고 하지 않았던 태도에 있었다. 관료주의적 마인드로 평생을 살아온 이들에게는 문제의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었던 전문가와 과학자들의 의견이 들리지 않았고, 실제로 죽음이 일렁이는 위험천만한 곳에 자신의 몸을 던져 사고를 해결했던 젊은 이들의 생명은 가벼웠다. 문제(진실)를 직시하지 못한 상태에서 진짜 해결책이 나올 리 없다. 결국 수많은 희생자들과 앞으로 마주해야 할 가슴 아픈 미래를 진실로 받아들이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만큼 희생의 규모는 커졌다. 


조바심의 진짜 원인

거리를 두고 보는 성공의 모습들은 참 달콤해 보인다. 그리고 나도 곧 그렇게 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조바심도 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한테는 그 모든 것이 참 쉽지 않은 것 같고 결국 머릿속에 생각만 가득 쌓다가 지쳐 포기하기를 반복한다. 세계적 위인이 되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그리고 내가 뭘 하려고 하는지도 대충은 알겠는데 시작은 어렵고 마음은 저만치 앞서 나가 있다. 이런 나의 조바심 안에는 35년 전 소련의 지도자들이 원자력 발전소 핵폭발 사고 앞에서 보였던 척하기와 진실 회피의 태도가 숨어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진짜 내가 부족한 부분과 필요한 부분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이미 아는 척, 이미 실력이 있는 척.. 그러면서 애꿎은 세상 탓만 하고 있었나 번쩍 정신이 든다. 


체르노빌 원전사고 해결을 위해 앞장서 일했던 화학자 Valery Legasov는 묻는다. "진실을 알면서도 그것을 외면하며 거짓에 수긍하며 살아가는 대가는 무엇인가?" 이 일로 인해 결국 소비에트 연방은 무너졌고, 진실은 밝혀지고, 진실을 말한 죄로 짧은 생을 뒤로하고 져버린 불운의 화학자에게는 뒤늦게 훈장이 주어진다. 


스스로에게 그저 이 정도면 괜찮은 척을 하면 조바심이 생기지만 나의 현재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정확히 알고 그 일을 하면 앞으로 나아간다. 그리고 진실을 빨리 직시할 수록 그만큼 내가 가진 시간과 에너지는 절약된다. 


"아무리 거짓으로 둘러싸 보려 해도 진실은 언제나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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