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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멘트 Apr 15. 2021

분류와 기준에 대한 무의식적 집착

나는 미니멀리스트였을까

이 곳에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일상을 살고 있다. 


일주일에 딱 두 번, 한 번에 최대 두 시간씩, 혹시 검문을 하는 경찰에게 잡히면 보여줘야 하는 허가증을 끊고서야 밖에 나갈 수 있는 일상. 살 수 있는 것도, 갈 수 있는 곳도 모두 제한되어 있어서 살 수 있는 것이라곤 식료품이 거의 전부인 1차원적인 일상. 집에서 계속 월급을 받으며 원격으로 근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참 운이 좋은이지만 그 소수의 운 좋은 사람에 속하지 않는, 점점 말라가는 은행 잔고와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이들의 존재가 마치 썰물에 드러나는 작은 섬들처럼 드러나, 그 누구도 그 삶의 무게를 무시할 수만은 없는 일상...며칠 전 어디에선가 코로나가 가진 자들에게는 휴가, 없는 이들에게는 지옥이 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래저래 잔인한 4월이다.


일주일이  168시간이라고 했을 때 내가 요즘 집에 머무는 시간은 대략 164시간. 

한국과 남미를 오가는 비행기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여권은 지난 십 년간 여러 나라의 입출국 도장들이 지저분하게 모여 너덜너덜할 만큼 오랜 시간 이리저리 많은 곳을 쏘다녔던 내게는 특히나 정말 한 번도 살아본 적 없는 일상이다. 그런데 이 고요한 일상에 조금씩 잔물결이 일고 있다.


며칠 전 갑자기 든 생각이 발단이 됐다. 

"책이나 컵을 받칠 수 있으면서 아주 편한 1인용 소파를 사고 싶다."  

그렇게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사고 싶다는 욕망. 

그런데 그 순간 느껴진 이유 모를 거부감.

이 거부감은 어디에서 온 걸까.


밀라노의 한 호텔, STRAF. 미니멀리스트한 디자인은 선이 단조롭고 대부분 필요에 의한 최소한의 것들만이 있다.  


난 마음에 꼭 드는 옷을 발견했을 때 가끔 옷을 사는데 내 기준에 깔끔해 보이기만 하면 비슷한 종류의 옷을 1년 내내, 몇 년씩 바꿔 입고 다닌다. 내 작은 주방에는 컵 두 개, 접시 두 개, 밥그릇 보다 조금 큰 그릇 두 개와 최소한의 주방기구가 전부다. 가구는 침대 하나, 책상과 의자 각각 하나, 화장품은 365일 로션에 허브오일을 몇 방울 떨어뜨려 아침과 저녁에 바르는 게 전부고 화장은 한 달에 한 번쯤 무쌍 꺼풀 눈이 못나 보일 때만 가끔 한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패션에는 무관심한' 미니멀리스트라고 했는데, 그러다 보니 스스로 '나는 미니멀리스트'라는 새로운 정의가 만들어졌고 자연스럽게 그 카테고리 속에 포함됐다.


그리고 나는 계속해서 어떤 특정한 카테고리로 분류되었다. 환경오염을 하는 게 너무 싫어 뭘 살 때 플라스틱 용기와 생활 쓰레기, 일회용 제품을 최소화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그렇다고 매번 잊지 않고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며 종이컵 하나, 비닐봉지 하나 절대 쓰지 않는 정도로 철저한 환경보호 가는 결코 아니다. 


또 이런저런 이유로 자연스럽게 고기를 자주 안 먹게 되어서 어떤 이들은 나를 채식주의자 혹은 비건으로 알고 있고, 사실 고기를 좋아하지도 않긴 하지만 어느새 '채식주의자'가 되어버린 이후로부터는 고기를 먹을 때면, 특히 나를 채식주의자로 알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고기를 먹을 때는 왜인지 모르게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그 불편한 마음은 내 머릿속의 '그래야 하는 나'와 실제 '현실적인 나'의 불일치에서 기원했을 것이고, 과연 나는 무엇을 위해 분류를 하고 살고 있나, 그 분류라는 것의 기준은 도대체 무엇인가, 그렇다면 나는 지금까지 기준도 모르는 분류를 하며 불편해 했나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 어이가 없었다. 도대체 미니멀리스트의 기준은 무엇이고, 환경을 위하는 사람의 생활에 대한 기준은 무엇이며, 프루 테리언부터 시작해서 비건, 락토베지테리언, 오보 베지테리언으로 이어져 세미 베지테리언의 수많은 분류는 내게 과연 어떤 유용함이 있는 것인가. 비건은 정말 꿀 한 방울 먹어서는 안되는가? 가끔 고기를 먹는 베지테리언은 비판받아야 마땅한 건가? 


부질없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 분류들, 기준들, 경계들.. 경계를 짓는 순간 고통이 시작된다는 것을 중생인 나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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