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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멘트 Feb 04. 2019

'1년'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토종 한국인의 남미 해외 취업 생생 경험담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월급은 많지 않았지만 하는 일이 너무나 여유로워 그 작은 월급조차 불평할 수 없었던 직장에서 영혼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던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던 동료와 이야기를 하던 중 이렇게 살다간 '편안함의 저주: 무자극, 무성장의 상태'에 빠질 것 같다는 위기감이 나를 엄습해 왔고, 지금처럼 취업난에 대한 기사가 하루가 멀다 하게 올라오던 그때, 나는 퇴사를 했다.

 


아무런 계획도 없이 퇴사를 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 계획이라는 것이 누가 봐도 참 현실적이지 않다는 것일 뿐이었다. 예전에 약 반년 간 브라질에서 살면서 남미의 매력에 푹 빠졌었던 나는 '국제기구 입사'라는 나의 꿈과 내가 좋아하는 남미를 연결시켜보고 싶었다. '어차피 국제기구에 입사하려면 영어 이외에 UN 공식 언어들 중 한 가지는 추가로 해줘야 하니 남미에서 대부분 쓰이는 스페인어도 배우고, 석사학위도 있어야 하는데 미국이나 영국 등 영어권 석사는 비용이 내 능력 밖이니.. 오히려 잘됐다, 이 두 개를 퉁쳐서 남미에서 석사를 해야지.' 이것이 나의 대략적인 (무모한) 계획이었다.


'오히려 잘 됐다'라는 나의 초긍정적인 마인드는 바로 현실적인 문제들에 부딪혔다. 남미에서 석사 학위는커녕 나는 스페인어로 내 소개조차 할 줄 몰랐다. 석사과정을 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익혀야 하고, 언어를 익히려면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눈을 떠서 잠에 들 때까지 온종일 한국어를 쓰는 환경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워, 그 언어로 석사과정을 입학한다는 것은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그래서 일단 현장인 남미로 가기로 했다.

@Torres del Paine, Chile 트래킹 중

이때 내가 정한 원칙은 딱 세 가지였다.

1번, 일단 현장으로 가되 언어를 배우는 기간을 확실히 정하고 간다. 

(언어를 배우는 것은 끝이 없는 일이기 때문에 기간이 없는 목표는 자칫하다가는 끝없이 늘어질 수 있음)

2번, 언어를 배우는 기간 동안 돈은 못 벌지 언정 최대한 지출을 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아무리 코딱지 같은 월급을 받았더라도 퇴사를 하면 기회비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법이다)

3번, 혹시라도 건강상이나 신변에 위험이 생기는 등의 극단적인 경우에는 미련 없이 다시 돌아온다. 

(일단 살고 봐야지)

처음에는 스페인어를 못하는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어찌 됐든 혼자서 와야 했다. 2번 원칙을 위해 각종 '돈 안 들이고 해외에서 사는 방법'등등으로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 내 노동의 대가로 숙식을 제공받는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는 workaway (https://www.workaway.info)와, 친환경적 지속 가능한 lifestyle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공동체를 만들어 마찬가지로 내 노동을 통해 굳이 특정한 숙식비를 내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Wwoof(http://wwoof.net)에서 아르헨티나나, 멕시코 등지에서 괜찮은 호스트들을 찾았다. 당연히 가족들은 영 못 미더운 눈치였지만 이런 무모한 일은 원래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해봐야 하는 거라고 생각했기에 별 개의치 않았다.


@Viña del Mar, Chile

결론적으로는 나는 운이 닿아 저 위의 두 가지 방법이 아닌 한국의 한 NGO의 자원봉사 자격으로 1년간 남미에 오게 되었다. 이로써 2번의 조건은 충족이 되었다. 월급은 받지 않으나 주거비가 해결되고, 아주 약간의 생활비 정도를 받는 조건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1년이라는 기간은 마치 내가 생각했었던 1번의 조건을 더 구체화시켜주었다. 1년간 언어를 배우고, 그다음에는 내 계획대로 석사과정에 입학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여기에 온 지 7개월이 훌쩍 지났을 무렵, 이 곳에서 1년을 채우고 석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이전보다 막연해지고 그만큼이나 내 미래는 더 불투명해져 가던 어느 날, 우연히 이 곳 현지에 진출한 한 한국 기업의 채용공고를 보게 됐고 나는 다시 한번 나의 무모함을 발현해 채용 지원을 했다. (물론 채용공고의 요건의 1번은 '스페인어 능통자'였다. 하지만 이 채용공고는 한국어로 올라왔었기에 한 마디로, 교포를 뽑는 자리였던 것이다. 나는 특별히 언어에 대한 목표가 있었기에 틈나는 대로 열심히 공부했으나, 내가 여기에 온 지 7개월 만에 스페인어를 능통하게 할리는 없었다.) 현지인들과의 소통이 업무의 대부분인 만큼, 처음에는 가슴 떨리는 매일의 연속이었지만 늘 그렇듯 시간은 지나


그렇게 나는 이곳에서 머지않아 직장생활 3년 차를 앞두고 있다. (이제 스페인어는 훨씬 편해졌다)




이전에 커피를 배우고 싶어 이야기를 잠깐 나눴던 카페 사장님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1년 진짜 열심히 하면 

         그게 뭐가 됐든 어느 정도는 할 수 있게 되죠."
 

맞는 말이다.

아무리 경험이 없고, 지식이 없어도 내가 무언가를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은 그래서 참 좋은 일이다.

시작하면 되니까. 그리고 내게 1년이라는 시간을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1년은 내가 그 일을 꽤 (잘)할 수 있는 아주 유용한 시간이기도 하다. 1년이라는 시간의 한 사이클을 돌고 나면, 그 전에는 너무 멀어 닿을 수 없이 막막하게만 느껴졌던 일이 형태를 갖고 내게 다가온다. 필자의 경우처럼 샛길로 조금 새도 괜찮다. 인생은 어쩌면 우리가 그런 과정에서 더 맛깔난 순간들을 맞닥뜨리기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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