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표절 사태를 보며...
이곳에서 주말 한가로운 시간에 지하철을 탄다는 것은 평일 러시아워에 출퇴근을 하기 위해 수많은 인파에 나를 파묻은 채 어딘가로 실려가야 하는 무미건조한 일상과는 분명 다르다. 분명 지하철 내부에서는 열차 내 잡상인과 공연 등을 금지하며 그들에게 돈을 주지 말라는 내용이 몇 분마다 한 번씩 방송됨에도 불구하고 물부터 각종 스낵류, 음반과 책 혹은 장난감까지 파는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지나다니고 앰프에 마이크를 연결해서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 연주를 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날도 지하철에 타자마자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이번에는 한 부부였다. 허름한 행색에 올이 다 풀린 겨울 털모자를 하나씩 쓰고 여자는 한 손에 네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딸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다. 애기 얼굴에 눈물과 콧물이 다 말라붙은걸 보니 이미 이전에 실컷 한바탕 울고 지쳤는지 엄마 손을 붙잡고 엄마와 아빠가 부르는 애절한 발라드를 얌전히 서서 듣고 있었다. 이 세 가족은 열차를 한두 칸씩 이동하며 똑같은 노래 한두 곡을 계속해서 반복해서 불렀는데 정말 노래하는 게 행복했는지 아니면 서로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는지 노래가 끝나고 열차를 한 바퀴 돌아서 동전 단 두 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한눈에 봐도 그들은 전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는데 주말에 동전 몇 닢이라도 받기 위해 어린 딸의 손을 붙잡고 추운 겨울날 지하철에서 노래를 하면서도 자신의 짝을 저리도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 이런 상황에서 저렇게도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노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내 내면 깊은 곳 속에서 이질감을 일으켰다. 나는 행복이라는 것이, 좋은 삶이라는 것이, 심지어 성공이라는 것이 그들의 것과 나의 것이 다른, 지극히 개별적이고 고유한 성격의 것임을 그때서야 알아챘다.
성공한 삶의 기준이 개별적이고 개인적이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나를 나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버팀목이 되기 때문이다. 남들이 뭐래도 내가 행복하고 좋다면 그건 이미 다른 삶과 비교를 할 이유가 없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삶이니까. 우리는 매번 독창성과 창의성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좋은 삶'에 대한 기준은 참 비슷한 듯하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과 경제적인 여유를 갖추고 대중친화적이며 안정적인 삶의 구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우리는 선망한다. 대다수가 부러워하는 삶을 가진 자에게는 찬사가 쏟아지고 그것은 또다시 후광효과로 그들이 마치 그들을 제외한 '뒤쳐진' 모든 이들이 따라가야 하는 목표지점처럼 보이도록 작용하기도 한다.
미슐랭 별 3개를 받은 스페인에 위치한 레스토랑 elBulli의 수석 셰프였던 세계적 요리사 페란 아드리아(Ferran Adrià)는 요리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주역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그가 처음 elBulli에서 홀로 주방을 맡고 약 3년간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 레시피들을 하나씩 모방해보는 시기였다. 그러다가 레스토랑 네그 레스코의 셰프 자크 막시맹이 "창조하기 위해서는 모방하는 것을 그만두어야 한다."라는 말에 큰 감명을 받고 나서는 이 '독창성의 기준'이 그의 향후 요리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버린다.
여기에서 독창성은 그저 남과 다른 독특함이 아닌, '스스로 나 자신의 기원이 된다는 의미'이다. 그는 elBulli의 요리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가 아니라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요리는 먹는 사람이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요리이기 때문이다. 그가 사람들에게 제공해주었던 것은 그 근처 다른 유명한 맛집보다 더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페란 아드리아 오로지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요리라는 매체를 통해 본인의 고유하고 개별적인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이었다. 그가 전 세계에 요리 역사에 한 획을 그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이것은 '요리 일반'이 아닌 그저 '자신의' 요리였다고 말한다.
온 대중의 사랑을 한가득 받았던 국민 작곡가와 여러 유명한 가수들로부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터져 나오는 최근의 표절 사태는 '나의 창작물'로 대중과 소통해야 하는 이들이 좋은 삶, 성공한 삶에 대한 기준을 스스로 직접 세우지 않고 타인의 동경과 관심을 받는 데에 익숙해지면 어떤 유혹에 빠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한 예인 듯하다.
나도 모르게 늘 '내가 갖고 싶었던 삶(=내 것이 아닌 그 어떤 것)'을 가진 이들을 맹목적으로 동경하고, 나 또한 그들처럼 되기 위해 애썼었는지도 모르겠다. 원래 진짜는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빈틈없이 완벽하지 않은 건데 말이다. 마치 조미료를 넣지 않은 음식이 입맛에 짝-달라붙지 않는 것처럼. 내가 나 자신이 되는 일 또한 내가 부러워하는 이들의 삶과는 영 동떨어져 보이는 조금은 없어 보이는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것이 내가 항상 나의 Original 버전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태도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