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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멘트 Jul 24. 2023

열 번의 골프레슨이 가르쳐준 것들

칠레에서 드디어(!) 골프를 배우다   

칠레는 거의 모든 면에서 한국에 비해 선택지는 한정되어 있는 데에 비해 물가는 정말 말도 안 되게 높다. 웬만큼 돈을 쓰지 않고는 먹고살기 힘든 이 나라에서도 꼭 누려야 하는 것들은 있다. 삶의 질을 높여줄 수 있으면서도 한국보다 더 저렴하거나 쉽게 접근이 가능한 몇 안 되는 것들, 이를테면 와인(정말 싸고 맛있는 와인이 많고, 분위기 좋은 와이너리들도 많아서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도 누릴 수 있는 와이너리의 매력이 꽤 있다), 캠핑이나 트레킹등 각종 아웃도어 활동(대자연과 한 몸이 될 수 있는 곳이 곳곳에 너무너무 많다!), 승마(단순히 갇힌 곳에서만 말을 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립공원 같은 곳에서도 말을 탈 수 있는 엄청난! 기회도 드물지 않게 있다), 그리고 골프다. 칠레에는 스크린골프장 같은 곳이 없으니, 누구나 눈 덮인 안데스 산맥을 올려다보며 대자연 속에서 연습할 기회가 주어질 뿐만 아니라, 골프장중 저렴한 곳은 약 2만 원 정도의 그린피만 내면 하루종일 골프장에서 문 닫을 때까지 쳐도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골프는 끝까지 마음이 잘 가지 않았다. 예를 들어 승마는 말과 교감할 수 있는 것도 큰 매력이지만, 보기보다 굉장히 격렬한 운동이라 한 시간 정도를 하고 나면 헬스장에서 열심히 운동한 것 못지않게 몸이 힘든데, 골프는 도대체 그 조그마한 공을 온몸을 휘둘러 치는 게 뭐가 그렇게 재밌단 말인가? 그리고 일단 골프를 배우려면 구비해야 하는 것들도 많고, 차가 없으면 골프장까지 가는 것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칠 때마다 또 돈이 들고, 땡볕에서 다른 사람들과 계속 걸어 다닐 바에야 그늘에서 혼자 운동하는 편을 택하는 개인적인 성향도 내게 골프가 그다지 매력적인 운동이 아니게 하는데에 한몫을 했다. 


그렇지만 어떤 기회들은 내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는 법이고, 칠레에 있을 때 골프는 꼭 배우라는 수많은 주변 사람들의 말들에 무의식 중에 세뇌가 되었었던 나는 마치 숙제처럼 남아있던 골프를 배울 기회가 왔을 때 굳이 마다하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어제 '골프라는 것이 어떤 운동인지만이라도 알아보자'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내가 계획했던 열 번의 레슨이 끝났다. 그리고 그 열 번의 레슨을 받으며 골프라는 운동이 내게 몇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어, 골프 고수들이 보면 피식하거나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민망함을 기꺼이 무릅쓰며 아주 개인적인 생각들을 적어보기로 했다. 


1. 아무리 불편해도 지켜야 할 원칙은 있고, 이를 극복해야 다음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아직도 그립이 나는 너무 불편하다. 직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골프채를 잡을 때 양손의 엄지손가락을 골프채의 중앙에 놓고 편하게 잡으면 될 것 같은데 코치는 굳이 왼쪽 손과 오른쪽 손을 마치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두 개의 빵이라고 생각하고 골프채는 햄이라며 햄이 밑으로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빵을 위아래로 배치해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칠레 사람 아니랄까 봐 비유도 샌드위치로..) 처음에는 손이 뒤틀리는 것 같아서 계속 '이게 과연 맞나' 싶었고 코치가 고치라고는 해도 몇 번은 '아냐... 내 직관이 맞는 거야. 일단 내가 편해야지'하면서 그립을 고치지 않았더니 정말 나아지지 않아서 결국 코치의 말을 듣고 그립을 고치니 이상하게 공이 잘 쳐진다. 많은 경우 직관은 우리에게 옳은 길을 제시해 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만큼은 처음에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불편함을 누르고 내공이 쌓이면 그때부터는 정말 나의 직관을 발휘할 때가 온 것이다. 


2. 힘을 어디에 줄 것인가는 꽤나 중요한 문제다. 

처음 몇 번은 내 체력이 골프를 잘 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이상하게 힘이 많이 들고 내가 들이는 힘에 비해서 공은 잘 안 나가다 보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고기를 안 먹어서 그런가? 근육이 전체적으로 부족해서 몸이 휘청거리나? 그런데 결국 문제는 힘이 아니었고, 굳이 말하자면 힘의 '분산'이었다. 의도적으로 내가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공을 앞으로 보내는 부분이었는데 나는 이상하게 백스윙에 내 온 힘을 가져다 쓰고 있었고, 그러다 보니 골프채가 공 쪽에 왔을 때 이미 나는 힘이 풀려버려 정작 중요한 공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 것이었다. 힘이 문제가 아니다.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연결하되, 나의 힘을 어디에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많은 일의 성패를 결정하기도 한다. 


3.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비교를 굳이? 

비교가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특히 처음 뭔가를 배울 때는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많이 배우기도 한다. 나를 가르치는 코치의 큰 딸은 겨우 열다섯 살인데 웬만한 성인보다 공이 멀리 나가는 것을 보며 좌절했더니 코치가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오히려 나에게 묻는다. 저 아이는 다섯 살 때부터 골프를 쳤는데 너는 겨우 열 번도 배우지 않아 놓고 왜 비교를 하는 거지? 생각해 보니 그렇긴 하다. 비교를 할 대상이 아닌 대상과 비교를 했으니 좌절은 당연한 것인데, 골프뿐만 아니라 나는 종종 너무나 쉽게 다른 사람들과 나를 비교해 버리고 너무나 '당연한 좌절'을 필요이상으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나. 


4. 실력은 성공의 가능성을 올리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코치는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만큼 (혹은 그 이상)을 골프를 쳤지만 그런 사람도 늘 완벽하게 공을 치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골프선수들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고전하다가 결국 승리할 수도 있고,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지만 그들이 다른 점은 성공적인 타율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 누구도 계산된 프로그램처럼 완벽하게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지만, 결국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지점은 완벽(목적지)이 아닌, 그 가능성을 높이는 일(과정) 뿐이다. 


5.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나의 ups and downs를 받아들이고 즐기는 것. 

공을 한번치고 바로 이어 다음 공을 치려고 하는 나에게 코치가 그런다. '공을 치고 나면 그 공이 어떤 경로를 따라 날아가고 어디에 떨어지는지를 보며 그동안 숨을 돌리고, 몸을 쉬어줘.' 잘 치면 잘 친 대로, 못 치면 또 못 친 대로 나의 공은 나름의 궤적을 그리며 어딘가에는 안착하는데, 그 여정을 기꺼이 따라가 주는 것 까지도 골프에 포함되는 것 같다. 그러다 보면 때로는 내가 실수한 부분이나 공이 잘 나갔을 때는 그 공이 저 멀리 허공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것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는 건데 바로 다음 공을 쳐버리면 나는 공을 치기 위해 골프를 치는 것밖에 안 되는 것이다. 뭣이 중한디? 당장의 결과에 상관없이 내가 즐길 수 있는 요소들을 찾아내어 재미와 여유를 찾아야 오래 할 수 있고, 오래 해야 잘할 수 있다. 그것이 무엇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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