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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구아빠 Nov 06. 2019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 아사이 료

동아리를 키워드로, 곳곳에서 연결되는 여섯 명의 이야기

더북클럽 서평팀, 책갈피

리뷰작성자 : Operarius Student

함께 모여 책을 읽고 자유롭게 글을 씁니다. 모두의 독서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북클럽 #책갈피




 영화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 그만둔대’의 원작 소설이다. 우연히 영화를 보고 나중에서야 원작 소설을 찾아보게 되었다. 원작과 영화를 비교해보자면 인물 개개의 심리묘사는 원작이 훨씬 풍부하고 자세하다. 그럼에도 대체로 영화는 원작에 충실하며, 가장 중요한 특징을 공유한다. 바로 키리시마가 끝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는 음미할 만하다. 




 배구부 주장 키리시마가 동아리활동을 그만둔 일은 교내에서 일대의 사건이었다. 소설이 초점을 맞추고 있는 지점은 그 사건 자체라기보다는 그로 인해 술렁이는 교내의 분위기이다. 키리시마는 외모와 학업성적, 동아리활동, 교우관계까지 어디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완벽한 학생이었다. 배구부를 휘어잡았던 절대적인 카리스마의 보유자였으며, 교내 계서제의 정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자취를 감춰버리자 그의 곁에 머물던 이들이 공황에 빠지게 된다.



대회를 앞둔 배구부는 주장 그 이상의 존재였던 키리시마의 부재를 절감하게 되고, 키리시마의 동아리활동 시간에 맞춰서 함께 귀가를 하던 친구들도 일과를 조정해야 했다. 일상에 변화가 없었던 이들은 오직 키리시마의 그늘 바깥에 있었던 영화부뿐이었다. 소설은 그 동안 키리시마로 인해 가려져있었던 미묘한 문제들이 키리시마가 사라지자마자 슬그머니 수면 위로 올라오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인물들은 개개의 사연 속에서 심리적 동요 끝에 각자 나름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두려웠다.열심히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을 깨닫게 될까봐…….  -본문 중에서-



 이와 같이 고교생들의 풋풋하지만 결코 상큼하지는 않은, 복잡미묘한 감정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 대개의 평가인 것 같은데, 나는 약간 결이 다른 느낌을 아울러 받았다. 교내 계서제의 가장 아래에 있는 영화부 인물들을 서술하는 부분을 보면 저자는 그들이 보여주는 건강한 아마추어리즘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충분히 서투르고, 충분히 볼품없지만, 완벽함과 화려함을 위해 영합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걷는 고고하고 우직한 자세에 나지막한 응원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나아가자면 인간의 조건에 대해서 숙고하도록 부추기고 있다는 생각이다.


 내가 보기에 키리시마는 자족적이고 완결한 존재, 그야말로 ‘신’이다. 소설 속에 키리시마의 흔적이 뚜렷하지만 결코 그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계서제의 정점에서 모두에게 은총(?)을 베풀고 있던 키리시마가 사라지자, 그 세례를 받던 불완전한 뭇사람들이 일시적으로 아노미에 빠지게 된다. 오직 영화부만 빼고.


 영화부는 키리시마와 접점이나 유사점이 거의 없는 가장 ‘인간’적인 동아리이다. 애초에 가장 ‘신’으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있어서 ‘신’에 무관심하고 오로지 자신의 동아리활동에만 집중해왔다. 동아리활동은 키리시마로 대변되는 절대자를 시큰둥하게 대할 수 있고 자신만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통로인 것이다.


 따라서 일시적으로나마 아노미 상태였던 남겨진 사람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도 동아리활동이다. 키리시마에 밀려 만년 후보였던 후스케는 경기에 더욱 몰입하면서 마침내 키리시마라는 강박에서 벗어나 자신감을 찾게 되고, 미카는 데이트를 핑계로 소프트볼 훈련을 소홀히 하는 에리카를 못마땅하게 여긴다.




 그리고 키리시마에 버금가는 탁월한 ‘인간’ 히로키가 있다. 동아리활동에 열심인 야구부 주장이 그에게 시합이나 연습 일정을 꾸준히 알려주지만 모두 무시하고 키리시마를 기다리며 농구를 할 뿐이었다. 그런데 키리시마가 사라지고 나서 영화부가 촬영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면서 ‘빛’을 느낀다.


“심장이 뛰는 속도를 그 무엇도 따라잡지 못하”게 되고, “무언가에 흠뻑 젖었던 마음이 조이면서 마치 꿀처럼 흘러나온 감정이 혈관 속을 달려나가”게 되면서 속으로 되뇌인다. “두려웠다. 열심히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을 깨닫게 될까봐…….” 그러고 나서 줄곧 외면해왔던 야구장으로 걸어간다.


나는 히로키가 야구장으로 걸어가는 이 장면이 어쩌면 ‘신’의 영역에 가장 가까웠던, 동시에 ‘신’의 권능에 가장 의존하고 있던 가장 나약한 ‘인간’이 스스로 족쇄를 끊고 해방되는 순간이라고 생각된다. 




 

누군가에게 <내 친구 기리시마 동아리 그만둔대>를 소개하자면 이와 같이 끊임없이 불안에 시달려야 하고, 회의해야 하지만 절대자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존엄을 자부할 수 있는 ‘신성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을 담은 책이라고 하고 싶다. 키리시마는 사라졌지만(또는 원래 없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가 사라지자 수많은 ‘키리시마’들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나름 근대를 고민하고 있다 보니 다분히 확증편향적인 후기이지만, 이따위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제쳐두고서라도 재미있는 소설이다. 



By. Operarius Stud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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