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의 숲, 주영님 후기

19년 9월 독서모임, 우리들의 인문학 시간 스무번째 만남

by 짱구아빠

공감이 가지만 동의할 수 없는 이야기.


1989년에 발매된 일본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내가 소설을 좋아하지 않아서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이 소설은 다른 소설들과 차이가 난다. 다른 소설을 읽을 때는(매우 유명한 고전 혹은 명작이 아니라) 그냥 누군가의 일기 혹은 누군가가 해주는 이야기 정도로 읽혔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단어들의 나열이나, 문장의 호흡으로 왜 명작인 지 밝히고 있다. 이 소설에 대해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면 다들 명작이라고 말했다. 이 소설 뿐만 아니라 이 작가 분이 집필한 소설들 모두가 좋은 내용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제 이 작가 분의 다른 소설들도 빨리 읽어 보기를 원한다.



만약 이 다른 작가가 이 내용으로 소설을 썼다면, 그 소설은 단지 야설에 불과하지 않았을 수 있다. 처음 야한 내용이 나왔을 때는, 버스에서 읽고 있었을 때였다. 사실 버스 안에 승객이 별로 없었지만, 너무 창피해서 책을 덮어 버렸다. 글리고 빨리 내리길…. 과거 첫 사랑(처음 사귄 사람이 아니라 처음 느낀 사랑)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나와 비슷한 면이 있다. 내가 처음 사귄 사람과 연애를 했지만, 사랑은 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사랑을 몰랐다. 사실 사랑을 몰랐다기 보다는 사랑을 주는 법을 몰랐다. 그렇게 처음 사람과 연애가 끝나고 두 번째 연애에서 사랑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사랑이란, 받는 게 아니라 주는 것 이라는 것을… 하지만, 이 것 또한 사랑이 아니지만…



와타나베가 소설 안에서 겪었던 일들을 토대로 내가 겪었던 일들을 다시 반추하게 된다. 내가 스스로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얘기들을 포함하고 있는 내용이여서 자세히는 서술할 수 없으나, 그 때 그 사건 때 나의 생각과 상대방의 생각과 그로 인해 느낀 점들을 다시 생각해 본다. 단순히 사랑은 받기만 하거나, 주기만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뭐라고 사랑에 대해 정의를 하고 있지 라고 생각이 들지만, 사랑은 덜도 말고, 더도 말고 그냥 같이 있고 싶은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같이 있다라는 것이 정말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만 있다라는 뜻은 아니라.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은 아니더라고 오히려 같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그런 느낌?



하지만,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사실 사회 분위기 보다는 등장 인물들의 성격인 거 같다)는 나로써는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시간이 현재도 아니라 1990년대라는 점은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런 가치관에 대한 혼란으로 많이 고민도 해보고 생각도 해봤다. 그게 중요한가?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한가? 너무 고리타분하면 어떠하고 너무 발랑 까졌으면 어떠한가? 나는 나이고, 나만 내 기준에 부합하면 된다고 생각하자. 저 사람이 저렇게 행동하든? 그 사람이 나를 이렇게 평가하든 무슨 상관이지? 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쉽지는 않다.



이런 소설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거부터…. 이미 내 안에서 사라져 버린 연애의 세포들을 다시 일깨워 주고 있다.(다시 연애를 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굳이 연애를 하지 않아도 연애의 세포들이 일어나고 그로 인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렵게 다시 생겨난 연애 세포를 잘 키워서 행복하게 살아야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휘림님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