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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구아빠 Mar 07. 2020

열심인 인사

이매송이님의 '경계'

여럿이 모여 하나의 단어로 각자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2월, 이매송이님의 글


나에게는 파키스탄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가게 앞 빌라 지하 일 층에 산다. 처음엔 슬쩍 와서 내가 쳐다볼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힐끔하고 사라졌다. 그런 일이 반복되자 나는 안녕, 하고 인사를 했다. 그 친구의 표정이 굳어지며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버렸다. 한동안 보이지 않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나의 출근 시간에 맞춰서 계단을 올라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손을 흔들며 인사하는 사이가 되었다.



나를 볼 때면 제자리에서 팔짝팔짝 뛰며 볼 안에 동그라미를 가득 담고서 마구 손을 흔들었다. 나도 역시 내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온 얼굴로 답변했다. 멀리서도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 나는 안녕! 에서 밥은 먹었어? 로 첫인사를 바꾸었다. 그런데 내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이름이 뭐야? 때로는 어느 나라에서 왔어? 라고 물어도 아무 말이 없었다. 친해질 수록 알고 싶은 게 많아지는 나는, 또박 또박 발음해 보고, 영어로도 말했다. 하지만 내 질문에는 화가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 친구는 화난 게 아니라 슬픈 얼굴이었다. 한국어로 말할 줄 모르는 게 아니라 일부러 하지 않는 거였다.



그 친구의 나이는 아마도 7~8살 인 것 같다. 근처 어린이집에서 하원하는 어린 아이를 힐끗 보는, 그들 중 누군가가 먼저 인사하기를 바라며 수줍은 표정을 짓고 있는, 나를 보며 잔뜩 웃고 있는 그 친구. 그녀에게 허락된 공간은 지하 방 몇 평과 건물 앞 작은 몇 걸음이다. 그 아이와 맛있는 것을 나눠 먹고, 재밌는 놀이를 함께 하고 싶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마음 속에서만 끝낸다. 그들에게 선택지가 없다면 굳이 내가 보여 줄 필요는 없는 거다. 그냥 오늘도 최선을 다해서 인사하고, 진심으로 반가워하고, 내일 또 만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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