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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구아빠 Mar 08. 2020

가장 가느다란(?) 면

공교롭게도님의 2월 글쓰기, '경계'







2월, 공교롭게도님의 글


"선 넘지 마"라는 말에서 보이듯 경계는 선이라는 인식이 통념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경계에 대해 말하기를, "사물이 어떠한 기준에 의하여 분간되는 한계"라고 정의내리고 있다. 이는 경계가 하나의 성질이 정지하는 지점이며, 경계를 중심으로 구분되는 면과 면 사이 성질이 서로 다름을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구분에서 유의할 점이, 경계라는 것 자체가 구분되는 두 면과 또다른 방식으로 구별되는 이질적인 뭔가라는 점이다. 즉, 면 2개와 선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그런데 기실 선도 면의 특수한 형태 중 하나 아닌가. 가장 슬림한 형태의 면이 곧 선이다. 물론 가장 슬림한 형태의 면이라는 선의 본질은 선이 실제로 그어지는 순간 훼손되고 만다.


결국에 현실에서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라고는 오직 면들뿐이다. 이 글은 경계 또한 선이 아니라 면이 아닐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본디 면인 경계가 선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 자신의 '면스러운' 특징을 어떻게 위장하는지 훑어볼 것이다. 나아가 선으로 탈바꿈한 '면', 바꿔 말해 경계가 동요하는 예외상황까지 짚어볼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경계가 있다. 일찍이 이선균이 강조했듯 선이란 넘어서는 안되는 것이라지만, 특히 선을 넘어서는 안되는 분야가 있다. 바로 스포츠, 그 중에서도 각종 구기종목이다. 축구, 야구, 배구, 농구, 테니스 … 선 하나에 울고 웃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실제 경기 장면을 떠올리면 더욱 분명하다. 경기에서 선은 명백히 하나의 면이다. 대부분 일정 두께의 하얀 선을 이용한다. 경계가 면임이 명백하지만, 실제 경기에서 경계는 결코 면이 아니다.


왜냐하면 경계가 하나의 면이라면, 서로 다른 두 개의 면 사이 독립적인 제3의 영역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내가 아는 어떠한 구기종목에서도 선에 걸쳐버린 시도에 가점 또는 감점을 주는 경우가 없다. 예컨대, 축구에서 골대에 맞은 슛은 점수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요컨대, 실제 경기에서 경계라는 면은 영역을 점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선에 불과한 것이다. 이처럼 스포츠에서는 물리적으로 구분되는 3개의 영역이 2개로 줄어드는 모순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러한 모순의 비밀은 경계라는 면이 둘 중 하나 다른 면에 잡아먹힌다는 데에 있다. 




1. 축구

축구에서 경계는 안에 속한다. 사이드라인 아웃이든, 골라인 아웃이든, 골이든 공은 라인을 완전히 나가야 한다. 경계에 걸치더라도 안으로 인정된다. 시각적으로는 3개의 영역으로 구분되지만 실제로는 2개의 면이 있을 뿐이다. 



2. 야구

야구에서도 경계는 안에 속한다. 외야의 라인 위에 공이 떨어지고 파울지역으로 나가도 페어볼로 인정된다. 야구 또한 시각적으로는 3개의 영역으로 구분되지만 실제로는 2개의 면이 있을 뿐이다.



3. 배구

배구에서도 경계는 안에 속한다. 라인 위에 공이 떨어져도 인으로 인정된다. 배구 또한 시각적으로는 3개의 영역으로 구분되지만 실제로는 2개의 면이 있을 뿐이다.



4. 테니스 

테니스에서도 경계는 안에 속한다. 라인 위에 공이 떨어져도 인으로 인정된다. 테니스 또한 시각적으로는 3개의 영역으로 구분되지만 실제로는 2개의 면이 있을 뿐이다.



5. 농구

농구에서 경계는 밖에 속한다. 선수는 경계를 밟아서도 안되고 공이 경계에 맞아서도 안된다. 3점슛 역시 3점라인을 밟으면 3점 영역의 바깥으로 인정되어 2점으로 인정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구 또한 시각적으로는 3개의 영역으로 구분되지만 실제로는 2개의 면이 있을 뿐이다.



위의 예들에서 살펴봤을 때, 경계가 어느 편에 편입되는지만 엇갈릴 뿐 핵심은 경계라는 엄연한 영역이 휘발한다는 사실이다. 이로써 경계는 선의 본질을 회복하고 구분이라는 본분을 수행할 수 있다.

한편, 선의 본질이 발휘되는 경계는 때때로 매개를 통해서 확장될 수 있다. 경계라는 절대적인 구분을 뛰어넘는 예외상태와 이를 가능하게 하는 매개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1. 축구

축구에서는 공간상의 경계라는 '선'이 완강하게 관철된다. 선을 기준으로 공이든 사람이든 안과 밖 2가지 상태만을 인정한다. 이미 선을 넘어 밖으로 나간 공이 안으로 판정되는 경우는 있을 수 없다. 선수가 피치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경기에서 배제된다는 것이다. 피치 밖에 있는 선수는 오프사이드 판정과도 무관하다. 이처럼 경계는 안과 밖을 엄격하게 가르며 공의 귀속은 경계를 넘어가는 순간 결정되기 때문에 피치 안팎의 선수는 이미 나가버린 공을 되돌릴 수 없다. 축구는 경계의 확장이 차단된 종목이다.



2. 배구

배구 또한 경계라는 '선'이 대단히 중요한 종목이다. 경계를 기준으로 만들어지는 공의 귀속으로 승부가 판가름난다. 라인뿐만 아니라 배구의 네트는 선수의 행위를 크게 제약하는 가장 엄격한 경계이다. 블로킹을 할 때 선수는 네트를 넘어가서도, 심지어 만져서도 안된다. 드물게 리시브한 공이 상대 코트에 떨어질 때에도 네트를 가로질러 갈 수 없고 네트를 우회해서 가야한다. 대신 축구와 달리 중요한 특징이 공중에 떠있는 공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예하고 공의 귀속에 대한 최종적 판단은 첫 바운드가 발생하고 나서 결정된다. 즉, 공간상의 경계가 아니라 평면상의 경계에 따르는 것이다. 



3. 야구

야구는 비교적 다른 구기종목에 비해 경계의 지배를 덜 받는 편이다. 가령 외야 라인 위에 떨어지는 뜬공을 외야수가 외야에서 잡든 파울지역에서 잡든 선을 밟고 잡든 아무 상관이 없다. 다만, 야구에는 대단히 특이한 경우가 있는데, 관중석에 야수의 손이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낙구지점이 홈런이어도 외야수가 껑충 뛰어올라 잡아낸다면 뜬공이 되고 만다. 외야수의 팔을 매개로 경기장과 관중석 사이 경계를 무화하는 것이다. 공의 귀속은 펜스를 넘어갈 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관중석이든 글러브 안이든 필드든 첫 바운드가 발생하고 나서 결정된다. 야구 또한 배구처럼 평면상의 경계에 따른다.



4. 농구

어쩌면 이 글을 쓰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농구 때문일 것이다. 농구는 축구처럼 경계라는 '선'에 강하게 제약받는다. 공이든 사람이든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페널티가 주어진다. 그러면서 동시에 '선'이라는 제약이 너무 쉽게 무너진다. 공이 나가더라도 선수가 마지막 스텝을 코트에서 밟고 뛰어올라서 떠있는 상태의 공을 낚아채서 코트 안으로 다시 연결한다면 이 공은 여전히 코트 안에 있는 것이다. 공의 귀속은 경계를 넘어갈 때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야구처럼 첫 바운드가 발생하고 나서 결정된다. 어쩌면 농구만큼 평면상의 경계에 지배받는 종목도 없을 것이다. 시각적인 경계는 엄연하지만 이 경계는 최종적인 판단이 촌각이나마 유예되는 불안정한 상태인 것이다.




위의 예들에서 살펴봤을 때, 경계가 무화하는 예외상황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2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공의 귀속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이 공이 경계를 넘어가는 순간에 결정되지 않는다.

둘째, 매개의 존재, 바꿔 말해 경계를 넘어가는 선수의 행위를 인정한다.



축구에서는 첫번째 조건이 충족되지지 못한다. 대신에 배구와 야구, 농구에서는 두 가지 조건이 모두 충족된다. 배구와 야구에서는 그러한 예외상태가 대단히 드문 반면에 농구에서는 그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예외상태'가 훨씬 빈번할 뿐이다. 



자, 이제 이 긴 이야기를 정리해보자면, 



1. 경계란 선의 본질이다. 

2. 기실 선은 하나의 면이다.

3. '선'이라는 면은 사라짐으로써 선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다.

4. 종목마다 평면상의 경계에 따르기도, 공간상의 경계에 따르기도 한다.

5. 평면상의 경계에 따르는 종목의 경우 공간상의 경계를 넘어갈 수 있는 선수의 운동능력이 부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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