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에도 자격이 있을까

어느 백수의 희망에 관한 소고

by 짱구아빠

기억도 정확하지 않다. 이십대 초중반의 어느 가을문턱이었다. 한동안 뜸했던 친구에게 연락이 와서 모처럼 만나게 되었다. 그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고 하니, 주변을 통해 의외의 소식을 듣게 됐었는데, 그 친구가 요즘 다단계를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자기들한테도 연락이 왔었다고..... 그래서 다들 만남을 피했다는 이야기도 함께.



나도 다른 친구들처럼 바쁘다는 핑계를 댈까 살짝 고민을 했지만 그래도 모처럼 보기로 한 친구의 연락인데 미리 단정짓지 말고 나가보자는 마음으로 약속을 미루지 않았다. 다단계에 빠진 친구의 마음을 돌려볼 수 있을까 했던 마음도 내심 컸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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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친구와 만나 다단계 이야기를 하게 됐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혹시 친구를 설득할 수 있을까 싶었던 마음으로 나갔던 내가 오히려 그 친구에게 설득을 당하고 왔다. 음,,, 내가 다단계에 빠져들었다는 것은 아니고, 친구가 다단계를 하는 이유에 대해 공감하게 되어버렸다고 해야되려나?



거칠게 대화의 흐름을 적어 보자면 이렇다. 내가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단계의 위험성이나 구조적 허점에 대해 열변을 토하면, 친구는 때로는 내 말을 방어하고 그러면서도 권유를 멈추지 않는 식의 흐름. 그렇게 장시간의 이야기가 오가다 끝에 듣게 된 친구의 이야기는 이랬다.



자신의 처지에서 노력한다 한들 평생 최저임금 받으면서 살아갈 뿐이라고. 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고졸에 가족 부양까지 해야되는 처지에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어떤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겠냐고. 변변히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내 인생에 희망 하나마저 없으면 어떻게 살라는 것이냐고. 나는 이런 모자란 희망이라도 잡아보고 싶다고....그래서 이 일을 하게 된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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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져나오듯 나오는 감정과 여러 복합적인 기분 때문에 나는 그자리에서 말을 더 이어나가지 못했다. 너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심해서 해보라는 말과 함께 마음을 못 헤아려줘서 미안하다는 말을 건내며 만남을 마무리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날 마음속으로 꽤 울었던 것 같다. 친구의 말이 슬펐던 것도 있지만 내가 그 동안 희망을 너무 쉽게 말해왔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 날이기도 했다.



톤앤 매너는 달랐겠지만 그 날 내가 했던 말이 결국 친구에게는 '현실에 맞게 살거나 그게 싫다면 뼈를 깎는 노력이라도 해봐라. 그렇지 않다면 희망을 품을 자격도 없다.' 로 들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친구의 마지막 말은 왠지 모르게 내 마음에 맴돌았고 흔적없는 울음이 속에서 며칠간 멈추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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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확실히 그 무렵의 나는 희망에도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이런저런 소망이야 누구나 품을 수 있는 것이지만 희망은 다르다고 믿었었다. 노력없는 희망이란 자기기만과 다를 바 없는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병신같지만 말이다.



삼십대 초중반에 접어든 나는 이제 더 이상 희망의 자격을 묻지 않는다. 스무살 무렵의 나는 지금의 나를 보고 희망을 품을 자격이 없다고 할까? 희망에도 자격이란 것이 필요할지, 희망이란 무엇일지 생각이 많아지는 오늘이지만 좋아하는 문구를 남기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 해보려 한다.






희망과 소망을 혼동하지 말자. 우리는 온갖 종류의 수천 가지 소망을 가질 수 있지만 희망은 단 하나뿐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제시간에 오길 바라고, 시험에 합격하기를 바라며 르완다에 평화가 찾아오기를 소망한다. 이것이 개개인의 소망들이다.

희망은 전혀 다른 것이다. 그것은 삶의 의미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만약 삶이 아무런 목적지도 없고, 그저 곧 썩어질 육신을 땅 속으로 인도할 뿐이라면 살아서 무엇하겠는가? 희망이란 삶에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공지영,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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