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새해 소원

새해를 맞는 어느 백수의 자세

by 짱구아빠

다가오는 버스를 보면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 밑을 보면 한걸음 더 내딛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한발 더 내딛으면 편해질 것이다.’ 저 낮은 곳의 지면이 나를 유혹하곤 했고, 빠르게 달려오는 차체의 단단함은 구원의 몸짓처럼 보였다.



힘들일 것도 없다. 살포시 뛰어내려 저 땅바닥을 편안한 침대삼아 마음껏 몸을 뉘우리라. 어려울 것도 없다. 달리는 차에 몸을 던진 뒤 마음껏 길바닥에 뒹굴어 보리라. 낭자하는 선혈은 고통의 끝을 알리는 축포가 될 것이다.


생을 마감하라는 수없는 유혹과 본능적인 망설임이 일상을 오가던 날들이었다.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을까. 그럼에도 무엇 때문에 나는 이 지상에 몸을 정박시키고 있는 것일까. 그 답을 알 수가 없었다.



생각을 비우고 싶고, 돈은 벌고 싶었다. 수원에 계신 고모부께 연락을 드렸다. 평일에는 숙식 노가다를 하고 주말에는 일산으로 돌아와 쉬지않고 과외를 했다. 노가다가 끝난 뒤에는 담배와 술이 가득한 숙소가 싫어 지친 몸을 이끌고 헬스장에 갔다. 그리고 문 닫을때까지 몸을 썼다.


그럼에도 생각이 죽지않아 뜬눈으로 밤을 지새며 간신히 잠을 청하곤 했다. 잠들고 눈뜨는 것이 무서웠다. 눈을 뜨면 하루가 시작된다. 무의미한 고통이 시작된다. 삶에 미련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죽음을 선택할 용기는 그것보다 더 없었다. 그저 ‘죽으면 내일 눈을 뜨지 않아도 되겠지. 고통은 이 것으로 족하겠지.’ 라고 말하는 마음의 소리를 덤덤히 듣고 있었을 뿐이다.







그 겨울에도 새해는 밝았다. TV에서는 연일 새해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내보내고 있었다. 연등을 날리며 새해소원을 비는 사람들을 티비로 봤다. 저들은 어떤 내일을 기대하고 있을까, 저들은 어떤 하루를 소망하는 것일까.



희망 가득한 뉴스들 속에서도 절망은 있었다. 어느 30대 초반 경찰관의 교통사고였다. 그는 얼마 전 경찰시험을 통과했고, 신혼살림을 꾸렸다. 1월 1일 교통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근무를 하던 중 차량이 달려와 그를 덮쳤고, 그렇게 갑작스레 그의 생이 마감됐다.



누군가에겐 새해에 대한 기대와 소망이 가득했던 날, 새로운 삶을 꿈꾸던 어느 젊은 경찰관의 비운의 죽음은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삶이란 무엇일까. 내일이란 무엇일까. 죽음이란 무엇일까.


지금 역시 어느 것 하나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지만 저 때를 계기로 나는 두가지 습관이 생겼다. 첫째는 입밖으로 죽고싶다는 말을 꺼내지 않는 것. 그리고 둘째는 새해마다 '올해는 부디 생각없이 살게 해주세요'라고 소원을 하나 비는 것.



얼마전 또 다른 새해가 밝았다.



여전히 세상에는 많은 소망과 내일을 향한 기대와 계획들이 넘실댄다. 마지막 백수생활을 시작하며 올해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소원하나를 빌었다.



‘부디 생각없이 살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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