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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구아빠 Aug 14. 2019

철학의 위안, 알랭 드 보통 (1)

Review by. 여행자

다소 어려울 수 있으나 흥미로운 철학 입문서.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당시에 책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문체나 글을 쓰는 방식보다는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위에 책을 많이 읽던 분께서도 '알랭 드 보통의 책은 원래 그렇다고, 그래서 별로라고’ 했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난 후 서점에서 어떤 책을 읽을까 둘러보고 있었다. 그러다 눈의 들어온 ‘알랭드보통 철학의 위안 불안한 존재들을 위하여’이라 책을 들었다. 문유석 판사님의 짜샤이 이론으로 책의 앞 목차와 책의 앞부분을 읽었다.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내용은 내가 책을 살게 할만큼 흥미로웠다. 그렇다. 그렇게 책을 샀다.




인기 없는 존재들을 위하여 -소크라테스-

p.34
<너무도 명백한 것이라거나 “당연한” 것으로 선언된 것들 중에서 실제로 그런 것은 거의 없다. 이런 사실을 인정하면, 우리는 이 세상도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유연하다는 진리를 배우게 될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기존의 확고한 견해들도 완벽한 추론 과정을 통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종종 몇 세기에 걸친 지적 혼란 상태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모든 것들이 현재의 모습 그대로여야 할 이유는 결코 없다.>


p.44
<우리를 초조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의 수가 아니라 그들이 그렇게 하면서 내서운 이유들이 얼마나 훌륭한가라는 점이다.>


 이 책은 한 철학자의 삶과 그의 철학을 보여주면서 현재 우리가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지 설명되어있다. 처음은 소크라테스의 이야기이다. 소크라테스는 모든 사람과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그들의 잘못된 생각들(소위 통념이라는 개념들)을 고쳐주려고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아테네 사람들이 보다 비판적인 사고를 하기를 바랐다. 그러다, 그 아테네 사람들에게 사형을 당한다. 사형을 당하더라도 소크라테스는 전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으며, 자신은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소크라테스가 죽은 뒤, 소크라테스가 원하는 대로 아테네 사람들은 비판적인 사고를 하였고, 소크라테스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 이야기에서는 두 가지 교훈이 있다. 첫번째는 현시대에 상식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과연 진짜인가 이다. 이 이야기는 내가 좋아하는 철학자 에히리 프롬의 생각과 이어진다. 두 가지 사고가 완전하게 동일하진 않지만, 많은 부분이 겹친다. 일단 현재 상식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다. “이런 성이고 이런 나이고 이런 직업이고 이런 곳에 살면 이렇게 해야지~!”라고 많이 듣는다. 이런 것에 대해 과연 누가 정의 내리는 것일까? 그 정의가 과연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생각할까? 설사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일하게 생각한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게 과연 옳은 것일까? 이런 질문에 대해서 예전에는 당연히 알 수가 없다라고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알 수가 없는 것이 아니라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지금의 답이다. 70억 지구인의 아니 5천만 대한민국의 사람들의 사고가 같을 리가 없으며 같을 필요조차없다. 같지 않아 불안한가? 그 불안이 불쾌한가? 그 불안으로 새로 태어날 수 있다.(니체)


 두 번째는 인기, 즉 남의 시선에 신경쓰지 말라이다. 과거에도 그랬겠지만, 현대 시대에는 여러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타인과의 관계가 중요하다. 그래서 타인을 신경쓸 수 밖에 없다. 라고 생각을 했었다. 현대에는 마음만 먹으면 오히려 사람들과 관계없이 살아갈 수 있으며, 타인과 관계를 하더라도 타인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이 말이 타인에게 해를 끼치거나 불편을 준다는 뜻은 아니다. 타인을 신경쓰지 않고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하라는 뜻이다.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한다면 오히려 타인에게 올바른 관심이 생긴다. 그럴까? 사실 나도 모른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아직 노력 중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은 이해한다. 요새 이런저런 일들로 화가 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대놓고 화를 내지 않더라도 내가 화가 났다는 것을 뿜뿜 풍기고 다녔다. 요새 그런 상황이면 일단 자리를 피한다. 나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으로 간다. 그리고 다시 생각한다. 그 때, 어떤 포인트에서 화가 났으면, 누구에 대한 분노이며, 그 분노의 정당성과 방향성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그럼 99프로 아니 100프로 그 분노는 정당하지 않으며, 방향마저 잘못되었다. 그 동안 내가 얼마나 잘못된 분노를 잘못된 방향으로 난사하고 살았는 지 다시 한번 후회한다.(이 후회는 단순한 과거의 책망이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가난한 존재들을 위하여 -에피로쿠스-

p.80
<우리 인간은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지켜봐줄 누군가가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쾌락을 중요시한 에피로쿠스이다. 철학을 잘 알지 못하는 나에게는 매우 생소한 이름이다. 철학자가 쾌락이라니…라고 생각을 하며 책을 읽었다. 그러다 내가 얼마나 세속적이며 내가 얼마나 오만하였는 지 알게되었다. 쾌락. 중요한 요소이다. 내가 생각한 쾌락과는 거리가 있었다. 쾌락이라는 것이 궁극의 감정이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에 대한 만족이다. 쾌락을 중요시하는 에피로쿠스는 포도주보다 물을 마셨으며, 고기보다는 빵과 채소로 이루어진 꾸려진 만찬에 만족하였다. 그럼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에피로쿠스는 우정, 자유, 사색 3가지를 꼽았다. 우정. 지금 나에게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몇 있을까? 지금 내가 속편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있을까? 지금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몇 있을까?라고 생각을 했는데, 아직도 나는 남에게 기대기를 원하는 사람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나 보다. 남에게 기대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뿌리없이 남에게 기대는 행동은 뿌리나 뽑힌 나무나 할 수 있는 행동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나는 철저히 가면 속에 숨어서 남에게 나를 들어내지 않는다. 들어낼 수 없었다. 들어내지 말라고 배웠으며, 들어낼 수 있는 방법을 배우지 못 했으니깐.이라고 남의 탓을 하는 버릇도 아직 고쳐지지 않았나 보다. 어찌되었건,  얼마 전에 너무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었다. 6개월 간의 금연도 포기할 만큼 힘든 일이었다. 아직도 해결이 되지 않았지만, 그 때 생각했다. 이 이야기를 나도 누군가에게 내 감정을 다 들어내면서 말하고 싶다. 라고 생각을 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나의 얘기를 들어줄 사람을.. 아니 내가 맘 편히 얘기할 수 있는 존재를… 이런 점은 나의 성격때문이라 잘 알고 있다. 단지 그랬다고 오늘따라 비가 서럽게 내렸고 오늘따라 추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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