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짱구아빠 Sep 12. 2019

『인류의 기원』, 이상희 윤신영 (2)

리뷰작성자 : Operarius Student

함께 모여 책을 읽고 자유롭게 글을 씁니다. 모두의 독서생활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북클럽 #책갈피





 사연이 어찌됐든, 역사학을 전공하는 입장에서 휴머니즘을 포기하라는 귀결은 꽤나 심각한 문제이다. 휴머니즘으로 대표되는 인간만의 특징을 배제한 채, ‘인간’의 세계를 탐구해야 하는 사람의 운신의 폭은 그리 넓지 않다. 휴머니즘의 끈을 끝내 잡고 있으면서 그 부질없음을 폭로해야 한다. 그래서 요즘은 휴머니즘을 보잘 것 없게 하는, 인간이 숙명적으로 짊어진 한계에 관심을 돌리고 있다. 근대의 총아 인간이 자신의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발휘한다한들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절대적인 한계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외부의 물리적 충격을 고스란히 견뎌야 하는 실체가 바로 몸이다.



 최근 몸에 대한 담론이 너무도 복잡하지만, 일단 개인적으로는 외부의 영향에 취약한 생물학적 실체로 보고 있다. 몸이란 극한의 온도에 손상이 발생하고, 날카로운 물체에 상처를 입으며, 신장(伸長)의 한계가 엄연한 물리적 실체인 것이다. 나아가 누구나 뼈와 살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시공간을 막론하고 전 인류의 공통적인 조건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인류 신체의 진화 과정이란 곧 절대적 제약과 이에 대한 적응인 셈이다. 그러므로 억겁의 시간이 지난다한들 현재는 물론이거니와 미래에도 인간은 몸이라는 한계에 언제나 부닥칠 수밖에 없다. 현재로서는 휴머니즘과 단절을 선언하지 않은 상태에서 휴머니즘을 얽어매는 자연의 섭리를 몸을 매개로 설명해내는 것이 소박한 목표이다.


 한편, 고인류를 분석하고 있는 『인류의 기원』에서는 그들의 의식 세계에 전혀 관심이 없다. 현실적으로 거기에 접근할 흔적이 거의 없어서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의식 세계에 대해 과감하고 적극적인 추론이 가능할 법해보임에도 여기에 그리 무게를 두지 않는 것을 보면 애초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특별한 감정이입 없이 오직 고인류들의 신체가 가진 한계와 적응에만 초점을 맞춘다. 성장, 노화, 신장, 체형, 허기, 추위, 생김새, 용적 … 이 책이 관심을 두는 키워드들의 예시이다. 신체가 극복할 수 없는 극한의 자극, 또는 그에 발맞춰 일어나는 진화 양상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수반되는 고인류들 사이 특정 행동양식의 흔적, 인간의 맹아를 덧붙인다. 휴머니즘을 배제한 상태에서 ‘인간’보다 동물에 가까운 것 같은 자연상태의 고인류의 생태를 재구성함으로써 초보적인 수준에서나마 사회의 가능성을 찾는 셈이다.



 ‘인류’의 흔적에서 ‘인간’과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인류의 기원』과 ‘인간’의 한계에서 ‘인류’와의 공통점을 노정하는 내가 어느 부분에서 겹치고 어느 부분에서 엇갈리는지 포착해야 하는데 사실 잘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손에 잡힌다면 변하지 않는 것과 변하는 것 사이 길항의 단서를 자연스레 일반화할 수 있을 것이고, 나아가 인간 군상의 복잡다단한 일면을 설명할 훌륭한 단초를 얻을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인류의 기원』에서 반드시 눈여겨봐야 할 점이 기원을 논하는 작업의 의미이다. 책의 제목답게 인간 이전의 사람, 태초의 인류를 다루는데, 바꿔 말하자면 기원에 대한 책이다. 원조란 본디 하나일 텐데 ‘원조’가 횡행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은 사이비들이 원조를 참칭하려고 경합하고 있다는 말일 것이다.



『인류의 기원』은 바로 이 인류의 기원을 독점하기 위해 치고받았던 경합의 기록이기도 하다. 바꿔 말해, ‘원래’라는 단어를 독점하기 위한 각 집단의 꿍꿍이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백인이 흑인보다 우월하다.”나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라는 문장을 옳게 만드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것이 ‘원래’ 그러함을 밝히는 것이다. 자연의 섭리 상 피부색이 하얀 사람들이 검은 사람보다 우월하며, 태초의 인류부터 성역할이 본디 그렇게 정해져 있었다는 주장은 차라리 종교에 가까운 믿음이다. 타당한 반박이 불가능한 전제 위에 서 있는 주장이므로 반박이 어려워 보일 뿐, 기실 그 근거는 매우 허약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원래’에 기대지 않는다면 합리적인 추론에 필요한 충분한 근거가 필요한데 이를 확보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경우든 고인류학의 가설은 정설로 자리잡기가 쉽지 않으며, 새로운 가설에 의해 부분적으로 반박되는 경우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다만, 새로운 가설 역시 같은 이유로 정설이 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양립할 수 없는 가설들이 팽팽히 맞서며 공존하는 양상이 많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처럼, 어느 것이 확실히 옳다고 판단하기 어려울 때, 자연스럽게 자신의 정체성과 지향에 부합하는 입장을 지향하게 된다. 활용할 수 있는 자료가 제한적이라는 고인류학의 특성 상 연구 대상을 재구성할 때 상대적으로 다른 학문에 비해 숭숭 뚫린 공백을 현재 연구자의 정치적 신념과 성향을 적극적으로 발휘해 메우곤 한다. 따라서 고인류학 학계 내부에서 제기되는 생활상 사이 각축은 곧 현재 정치적인 이슈들의 치열한 대리전이기도 하다.



고인류학을 담론 투쟁의 최전선이라고 할 때, 나는 여기에 얼마나 발맞추고 있을까. 한국은 고인류학의 변두리이기 때문에 학계의 최신 동향에 뒤쳐져 있을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저자는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학계인 미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물론 약간의 시차는 감수해야겠으나, 『인류의 기원』을 통해 최근 학계의 추세를 조금이나마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새롭게 제기되는 정치적인 이슈도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다. 특히, 인종과 젠더 문제는 이 책에서도 중요하게 다뤄진다. 한국은 민족이라는 이슈에는 민감하지만 인종이라는 이슈에는 매우 둔감하다. 단일민족이라는 신화가 이제는 우스갯소리가 되어버리고 길거리에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돌아다니는데, 인종이라는 이슈도 조만간 수면 위로 올라올 것이라고 본다. 아울러 요 사이 한국에서 나날이 격화되는 남녀 간 갈등을 감안한다면『인류의 기원』에서 유의미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예컨대, 나는 이 책이 제공하는 최근의 고인류학 연구 성과를 접함으로써 내가 정설로 알고 있는 고인류들의 행동양식, 즉 백인과 남성의 우월을 뒷받침하는 이론들에 대한 의심을 상기할 수 있었다.



 고인류학 전공자가 아님에도 『인류의 기원』을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 인간의 세계가 궁금하다면, 전혀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사람들의 세계를 보는 게 유용한 경험이 될 것이다. 『인류의 기원』을 읽음으로써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이면을 포착하는 감각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지향에 대해 신선한 자극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러했듯.




By. Operairus Student

매거진의 이전글 『간호사 독서모임 해봤니?』, 김민지 외 공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