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 친절과 관심의 차이

추신. 나의 친절은 너에게 관심으로 다가갔던 것일까?

by 그 소년

그 애가 나에게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낀 건, 아주 사소한 순간들 때문이었다.

목요일 아침, 계단에서였다. 친구들과 떠들며 계단을 내려가는데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학생이 있었다. 난간 쪽으로 비켜서서 우리가 지나가게 해 줬다.


방송부 그 애였다. 나는 그냥 지나가려다가, 문득 그 애를 쳐다봤다. 우리 눈이 마주쳤다.


"고마워."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나왔다. 친구들과의 대화를 이어가면서도, 그 애에게만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그 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냥 멍하니 서서 우리가 내려가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뭐야, 왜 저래?'


계단을 다 내려와서 친구들에게 물었다.


"야, 방금 그 애 봤지?"

"응, 방송부 애? 왜?"

"아니, 그냥."


사실 나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냥 비켜서 준 것뿐인데, 고맙다고 말한 게 이상했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갔을 텐데.


'그냥 친절한 거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려 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알고 있었다. 그게 단순한 친절은 아니었다는 걸.

며칠 뒤, 점심시간이었다. 친구들과 운동장을 산책하고 있었다. 날씨가 좋아서 밖에 나와 있는 학생들이 많았다. 지현이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야, 너 요즘 이상해."

"뭐가?"

"자꾸 두리번거려. 누구 찾아?"

"아니야, 그냥."


하지만 지현이 말이 맞았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혹시 방송부 그 애가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하고.


'왜 내가 그 애를 찾고 있는 거지?'


그 생각을 하는 순간, 멀리 교사동 창문 너머로 누군가 보였다. 방송부실 창문이었다. 거기에 그 애가 서 있었다. 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우리 쪽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정확히는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눈이 마주친 것 같은 순간, 그 애가 황급히 몸을 숨겼다.


'쟤는 진짜 날 보고 있었네.'


그 사실을 확인하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찝찝하다기보다는... 뭐랄까, 신경 쓰였다. 누군가 저렇게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게.


"너 뭐 봐?"


지현이가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등 뒤로 계속 그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중간고사 일주일 전, 시립 도서관에서였다. 혼자 공부하러 왔다가 책을 찾으려고 서가 사이를 걷고 있었다. 소설책 몇 권을 골라 들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누군가와 마주쳤다. 방송부 그 애였다.


"어."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나왔다.


"으응."


그 애가 어색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잠깐 멈춰 섰다.


'왜 여기서 마주치는 거야.'


속으로 생각했지만, 도서관이니까 당연한 일이었다. 시험 기간이니까. 그 애 손에 수학 문제집이 들려 있었다.


"시험공부?"


내가 먼저 물었다.


"응, 수학이 좀..."


그 애가 대답했다.


"나도. 수학 진짜 어려워."


나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게 전부였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우리는 각자 책을 빌리고 도서관을 나왔다. 같은 방향이라 잠깐 함께 걸었지만, 갈림길에서 각자의 길로 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계속 생각했다.


'왜 내가 먼저 말을 걸었을까?'


시험공부냐고 물을 필요도 없었고, 수학이 어렵다고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지나치면 됐는데.


'그냥... 어색해서 그랬던 거야.'


나는 스스로를 납득시키려 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다. 그게 단순히 어색함을 피하려던 게 아니라는 걸. 6월 초, 폭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우산을 안 가져온 나는 현관 처마 밑에서 비가 잦아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친구들은 다 먼저 갔고, 나는 혼자였다. 비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우산 없어?"


돌아보니 방송부 그 애였다.


'또 마주쳤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침엔 안 올 것 같았는데."

"나도."


우리는 나란히 서서 빗줄기를 바라봤다. 침묵이 흘렀다. 어색하지는 않았다. 그냥... 조용했다.


"언제 그칠까."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글쎄, 일기예보에선 저녁까지 온다던데?"


그 애가 대답했다.


"에이, 진짜?"


나는 한숨을 쉬었다. 그때 멀리서 지현이가 우산을 들고 손을 흔들었다.


"수아야! 같이 가자!"

나는 "어, 갈게!"라고 대답한 뒤, 그 애를 돌아봤다.


"그럼 나 먼저 갈게. 조심히 가."


그렇게 말하고 뛰어갔다. 우산 속으로 들어가면서 뒤를 돌아보니, 그 애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빗속에 혼자.


'괜히 미안하네.'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같이 가자고 할까 하다가, 그러면 너무 이상할 것 같아서 그냥 갔다. 집에 도착해서도 그 장면이 계속 떠올랐다. 비를 바라보며 서 있던 그 애의 모습.


"조심히 가"라는 내 말을 들을 때의 표정.


'왜 그렇게 기뻐 보였을까.'


나는 창문 밖 빗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그 애에게 나는 뭘까.


계단에서 "고마워"라고 했을 때, 도서관에서 수학이 어렵다고 말했을 때,

비 오는 날 "조심히 가"라고 했을 때.


그때마다 그 애는 이상하게 반응했다. 마치 그게 엄청난 의미가 있는 것처럼.


'나는 그냥 친절하게 한 건데.'


하지만 그게 정말 단순한 친절이었을까.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저렇게 했을까. 계단에서 비켜서 준 학생에게 일일이 고맙다고 했을까. 도서관에서 마주친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었을까. 비 오는 날 옆에 서 있던 사람에게 "조심히 가"라고 했을까.


'아니야.'


솔직히 인정하자면, 아니었다. 그 애였기 때문에 그랬다. 방송부 그 애, 나를 좋아하는 것 같은 그 애. 그 애였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반응했던 거다.


'이건 친절이 아니야.'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숨을 쉬었다.


'관심이야.'


인정하기 싫었지만, 사실이었다. 나는 그 애에게 관심이 있었다. 좋아한다는 의미의 관심은 아니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냥... 신경이 쓰이는 거였다. 누군가 나를 그렇게 바라보고 있다는 게, 누군가 나 때문에 기뻐하고 있다는 게. 그게 부담스럽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동시에 조금은... 나쁘지 않았다.


'나 지금 뭐 하는 거지?'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친절과 관심의 차이.


그걸 이제야 알게 됐다. 친절은 누구에게나 베푸는 거고, 관심은 특정한 사람에게만 가는 거다. 그리고 나는 이미 그 애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였을까. 복도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아니면 방송을 듣기 시작했을 때부터?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새 그 애는 내 일상에 들어와 있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나는 그 애에게 반응하고 있었다. 친절이라는 이름으로. 하지만 그게 정말 친절뿐이었을까.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날 밤, 잠들기 전까지 계속 생각했다. 빗속에 홀로 서 있던 그 애의 모습을.


"조심히 가"라는 내 말을 들을 때의 표정을.

그리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이 생각들을.


'조금만 더 조심해야겠다.'


그렇게 다짐했다. 더 이상 그 애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내지 않기로.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다.


이미 늦었다는 걸.


나도, 그 애도, 우리 둘 다 이미 서로의 세계에 들어와 있었다. 한 명은 조용히 다가가고, 한 명은 애써 선을 긋지만. 결국 우리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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