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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소통가 조연심 Jan 13. 2017

괜찮아, 그땐 나도 그랬어

떠나는 사람 때문에 상처받지 않으려면...

“일의 의미를 못 찾겠어요. 뭘 좋아하는지, 뭘 잘하는지 찾으려고 그만두는 거예요.” 

뭔지 모를 어색한 기운이 잠시 스쳤다. 이 친구만큼은 다를 거라 믿었다. 아니 달랐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는지 모른다. 내가 알고 지내던 20대들과는 뭔가 다르게 말하고 행동하던 게 뭐였나 싶었다. 순간적으로 그동안 열려 있던 내 마음에 강렬한 빗장이 쳐졌다. 동시에 뇌리에 스친 생각. 

‘그럼 그렇지.’


“대표님과 인연이 끊어질까 봐 정말 고민 많이 했어요. 일을 그만두고 나서도 만나고 싶은데 그게 안될까 봐 두려웠어요. 주변 사람들의 조언도 저를 두렵게 했어요. 다들 지금 그만두면 안 된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이런 고민한 지 꽤 되었고, 언제부턴가 일이 재미 없어지고,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이것저것 배우기 시작했는데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고생하더라도 지금은 그만두는 게 맞을 거 같아요.” 

“알았어. 안 잡을게. 잡아도 나갈 거 아니까. 니 안에 내가 있어서 어떻게 행동할지 아니까. 괜찮아, 그 시절엔 나도 그랬어. 그러니까 청춘이지.” 


마주 앉아서 이 얘기 저 얘기해주고 싶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그 자리가 싫었다. 나를 거절하고 헤어지자는 이야기로 들려 마음도 상했다. 그렇지만 저 이야기를 하며 그 자신도 얼마나 불안하고 속상할지를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많은 말 대신에 딱 한마디만 했다. 


“나가는 그 날까지 웃고 다녀. 다시는 안 만날 사람처럼 무게 잡지 말고.” 


1년여 시간 동안 함께 웃고 고민하고 공부하고 노력하면서 참 많은 일들을 만들어왔다. 다른 20대와는 다르다고 주변에 침 튀겨가며 칭찬도 많이 했다. 하지만 결국은 그녀도 여느 20대와 다르지 않았다. 다분히 무모하고 격정적이고 충동적이었다. 꼭 성공해서 다시 만나고 싶다는 그녀에게 제발 좀 그러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진짜 진심으로 그러길 바라니까. 



가장 아끼고 사랑했던 후배이자 유능한 직원의 퇴사 앞에서 나는 나의 과거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몇 년 전 자신의 인생 전체를 걸고 나처럼 살겠다며 내 곁을 함께 하던 5년 지기 제자도 나를 떠났었다. 3년 이상을 곁에서 한결같이 충성을 보이던 직원은 일부러 떠나보냈다. 헤어질 때마다 그럴듯한 명분을 만들어 어쩔 수 없는 헤어짐이라는 것을 여기저기 알렸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었으니까. 아무리 아닌 척 해도 마음이 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시간 속에서 나는 나만의 사람을 대하는 원칙 아닌 원칙을 만들게 되었다. 


“100% 믿되 100% 믿지 않는다.” 


내 눈 앞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는 평생 함께 할 것이라 100% 믿지만, 언제고 돌아설 수 있다는 것 또한 100% 믿는다는 말이다. 마치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진실 외에는 모두 변한다는 것을 믿는 것처럼. 


아무리 오랜 시간 함께 하고 싶어도 인연이 아니면 헤어지게 된다는 것을 꼭 경험하지 않아도 알면 좋으련만 시간은 그런 면에서 참 공평한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기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지금 선택하는 그 길이 맞는지 아닌지는 끝까지 가 봐야 알 수 있다는 생각. 그 시절 어른(?)들의 눈에는 다분히 충동적이고 무모하게 보였을 나 역시 내가 선택한 길을 맞다고 여기며 가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어떤 선택을 하면서 죄책감을 갖거나 위축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해 주고 싶었다.  


그땐 나도 몰랐다. 돌이켜보니 처음 헤어짐을 경험했을 당시는 나도 어렸고 서툴렀다. 그래서 남아 있는 정을 떼기 위해 지금 생각하면 참 한심했을 법한 단정적이고 아픈 이야기와 행동들을 서슴지 않고 해댔다. 믿고 있던 스승으로부터 차갑고 냉정한 이야기를 들은 그녀는 얼마나 아팠을까? 다시는 안 볼 사람 취급한 게 그녀가 아니라 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모든 게 서툴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 나도 많이 성장했다. 나를 떠난 이들이 첫 월급 탔다고 선물까지 사서 찾아오는 이도 생겼고, 어떤 프로젝트는 함께 하자고 내가 먼저 손 내밀 줄 아는 아량도 생겼다. 어찌 되었건 간에 나를 떠나는 이들이 한편으로 보면 후배고, 제자고, 멘티고, 딸이고, 동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그들에게 얼굴 보고는 제대로 할 말 못 하겠는 내 맘 속 많은 말들을 이렇게 글로라도 알려주고 싶었다. 어차피 앞으로도 비슷한 상황들이 지속적으로 반복될 거라는 걸 아니까. 

우리 모두는 언젠가 누군가의 멘토가 되고 때론 누군가의 멘티가 된다. 그리고 매 순간 우리의 역할은 바뀌고 순환하게 된다. 


멘토가 멘티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사장이 직원에게

엄마가 딸에게

언니가 동생에게

친구가 친구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각각의 입장에서 할 말이 참 많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내가 늘 곁에 있어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해 주고 싶은 말들을 일일이 잔소리하듯 남기고 싶었다.


무모하다는 거, 생각 없이 행동하는 거,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거, 감정적으로 서툰 거, 멀리 있는 가치보다 눈앞의 이익이 먼저인 거, 이런 게 결국 청춘이라 그런 거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아니 어떤 삶이던 살 가치고 있고, 살만한 인생이라는 걸 그들보다 딱 2배의 길이만큼 살아낸 인생 선배로서 들려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달콤한 위로를 보내주기만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알았다. 결국 그렇게 징징대는 대로 놔두는 것이 결국엔 그들에게 독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나도 그땐 그랬지만 지금처럼 살 수 있었던 이유- 백도 없고, 돈도 없고, 변변한 뭣도 없던 나였다-를 알려줘야 할 것 같았다. 그것만이 내 인생에 잠시 머물다 간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었다. 내가 사회 초년생일 때 이유도 모르고 믿고 따르던 사람에게 그렇게 혹독한 버림받음을 당하며 깨닫게 되었던 진실- 결국 내 탓이다. 준비 안 된 내 탓이다- 을 알려주고 싶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를 믿고 따르던 사람들에게 크던 작던 상처를 주며 지금의 내 자리에 올라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온라인 영향력으로 인해 한 번도 만나지 않았던 낯선 청춘들로부터 인터뷰 의뢰가 잦다.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오르셨나요?”

“무슨 일을 하던 그 일의 끝까지 갔기 때문이지. 어떤 일을 할 때 그 일을 할지 말지를 직접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해. 어차피 끝까지 가보면 알게 되니까. 이 일이 나랑 맞는지 아닌지, 저 사람이 나랑 인연인지 아닌지, 이 일이 되는 일인지 아닌지.” 

거기에 하나 더! 

처음엔 뭔지도 모르고 무작정 열심히 하면 되고, 때가 아닐 때는 기다리면서 열심히 하고, 준비가 되었을 때는 알면서도 당해주는 기분으로 열심히 하라고... 

어차피 그 열심은 내 인생 그 자체니까. 


다시 시작하는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 

어떤 꿈을 꾸던 

어떤 삶을 살던 

나는 그들의 과정을 응원하고 싶다. 


어차피 나도 그땐 그랬다는 것을, 

그래서 서툴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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