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으론 불행, 주관적으론 행복
지금까지 고수하는 확신이 있다. 인생은 객관적으로 불행이나 주관적으론 행복이란 사실이 그것이다.
나이가 들면서 염려와 근심은 늘어난다. 지긋한 유치원을 졸업하는가 싶으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웬걸, 6년이다. 힘차게 달려서 졸업하면 중학교가 기다린다. 친구와 경쟁이 시작되고 슬슬 성적에 압박을 느낀다. 끝나는가 싶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가야 한다. 중학교 때 공부는 공부도 아니다. 친구와의 경쟁은 치열해지고 성적과 진로에 대한 스트레스는 커져만 간다. 그렇게 고생한 뒤 마지막 시험인 줄 알았던 수능을 힘겹게 마치면 대학에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치러야 한다.
그토록 바라던 대학에 입학한 것도 잠시, 졸업 후 취업을 염려한다. 온갖 자격증과 승진을 위해 또 공부한다. 취업 후엔 결혼을 걱정한다. 결혼 후엔 자녀 양육에 온 힘을 쏟는다. 자녀가 잘 자라주면 잠시 행복에 겨우다가도 내가 겪은 인생 고난의 전철을 밟는 자녀를 보며 이마에 주름이 는다. 지금껏 살아온 것도 고난이었는데, 이제 자녀의 앞날까지 걱정해야 하니 한숨은 늘어난다. 어느덧 나이가 들고 건강은 점점 악화한다. 인생이란 배를 힘겹게 노 저으며 어디론가 떠내려가지만, 그 목적지는 죽음이다. 그렇다. 인생에서 고난과 불행은 객관적이다. 누가 인생을 행복이라 했던가.
하지만 인생을 주관적으로 바라보면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은 주관적이고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행복과 불행은 해석 차이다. 인생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따라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내게 있는 것으로 감사하며 만족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하다. 반대로 늘 남과 비교하며 내게 없는 것으로 불평하며 감사할 줄 모른다면 그 사람은 불행하다.
재밌는 사실은, 사람마다 연봉이 얼마든 그들은 늘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버는 만큼 쓸 것이 많다. 아니 쓰고 싶은 게 많다. 자녀를 학원 보내고 싶은 마음은 같을 테니, 한 곳을 보내고 싶으냐, 여러 곳을 보내고 싶으냐의 차이다. 소형차를 타느냐, 중형차나 대형차를 타느냐의 차이다. 연봉이 늘수록 욕심도 늘 테니,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게 사실이다. 만족하면 행복하나, 만족하지 못하면 불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