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할아버지는 아빠에게 여전히 영웅이란다

40년 넘게 간직한 믿음

by 냉수 한 그릇

아들과 놀아주는 건 어쩔 수 없는 내 사명이다. 동생을 안겨주지 못했으니 나라도 열심히 놀아줘야 한다. 육아를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아들과 놀기 시작했다. 내 생애에 이렇게 열심히 놀았던 때가 있을까 생각할 정도니, 이만하면 아빠 역할은 충분히 한 셈이다. 장기, 오목, 바둑, 보드게임, 이불싸움, 이불텐트, 숨바꼭질, 총싸움, 레고, 드론, 큐브에 축구, 배드민턴, 인라인스케이트, 캐치볼 등 안 해본 것이 없다. 한번 꽂히면 며칠 혹은 몇 주, 심지어 몇 년 동안 하기도 한다. 축구를 못 하는 난 아들 때문에 무려 5년이나 공을 차야 했다. 목동에 있는 오목공원에서 공을 읽어버린 뒤 드디어 축구에서 해방되었다.


열심히 놀아준 덕에, 아들 장기실력은 또래와 비교하면 수준급이다. 한때 장기 프로기사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며 장기에 미쳐있었을 때, 옆에서 내 모습을 본 아들은 자연스레 장기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재미 삼아 알려준 장기였고, 아들과 장기를 둘 땐 차든 포든 한두 개 이상은 반드시 떼야했다. 하지만 이제는 말 하나도 뗄 수 없다. 내가 ‘원앙마’든 ‘귀마’든 ‘양귀마’로 하든, 자칫 긴장의 끈을 늦추면 바로 아들에게 외통수로 지고 만다.




내가 7살 때, 사촌 형에게 장기를 처음 배웠다. 형 실력은 누나들과 비슷했지만, 형이든 누나든 아버지에겐 늘 패배하기 일쑤였다. 당시 아버지는 장기 초짜 어린이 눈엔 그 누구도 절대 깰 수 없는 고수였다. 아버지가 서울에 올라오셨을 때, 아들은 내 영웅이었던 아버지에게 겁도 없이 감히 장기에 도전했다. 손주와 할아버지의 장기 대결인 셈이다.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은 어릴 적 내 영웅이었던 아버지와 비등한 경기를 하더니 마침내 “장군!”을 크게 외치며 보기 좋게 할아버지를 이겼다. 손주에게 지며 껄껄대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내 눈엔 왠지 쓸쓸해 보였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내 마음속에서 북받쳐 올랐다.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그저 기쁠 수만은 없는 복잡한 감정이 내 가슴속에서 피어올랐다는 것만 기억할 뿐이다. 분명 아버지는 손주를 이길 수 없어 봐주셨을 것이다. 영웅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 법이지 않은가. 난 그렇게 믿고 싶다.


장기를 처음 배우던 아들 눈에 비친 내 모습은, 어릴 적 내가 보았던 아버지 모습과 같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영웅이었다. 아들 눈에도 난 영웅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쩔쩔매며 다음 수를 찾고 있는 날 우습게 짓밟아버리는 아들 눈에도 여전히 난 영웅일까? 아버지 실력은 여전히 고수일 거란 환상을 품은 채 40년 넘게 살아온 내가 느낀 행복을, 아들에게 전수하지 못했으니 미안할 뿐이다. 아니, 영웅이라고 믿었던 내 믿음과 환상을 아들이 무참히 짓밟아버렸으니 오히려 내게 미안해야 하는 걸까.


손주에게 일부러 져준 게 확실하다고 믿고 싶은 아버지는 여전히 내게 영웅이다. 아들 눈에도 내가 영웅으로 비치길 바란다. 미래의 내 손주에게 항복한 모습을 보면서도 내가 봐줬다고 믿길 바라면서 말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