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터 같은 초등학교 하교 시간
지금은 매우 익숙해졌다. 하교하는 자녀를 기다리는 초등학교 정문 앞은 늘 아줌마들로 북적인다. 서로 웅성거리며 서 있는 그들 사이에 ‘남자’라는 정체성으로 홀로 있기란 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들을 기다리며 서 있던 첫날, 난 부끄러움에 고개를 들기 힘들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긴 했지만, 사실 내 속은 민망함에 타들어 가고 있었다. ‘왜 이 시간에 아빠가 일하지 않고 자녀를 데리러 왔을까?’라며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볼 것 같은 그들 눈을 피하며 생각했다. ‘이거 양복을 입고 가야 하나….’ 마치 일하는 중에 온 사람처럼 티 내려고 말이다. 그러나 이젠, 그 아줌마 대열에 당당하게 서 있는 나 자신을 보니 대견하기까지 하다. 뭐든 많이 하면 익숙해지나 보다.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니 이게 참 우습다. 아들이 어린이집에 다닐 때만 해도 등·하원은 내 담당이었고, 어린이집 앞에서 누구를 만나든 전혀 부끄러움 같은 건 느끼지 못했다. 어엿한 직장인(?)이었으니 말이다. 일을 시작하고 끝나기 전에 잠깐 등·하원시키는 것이니, 누가 보더라도 난 당당했다. 작업복인 양복을 입고 있었던 것도 한몫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민망해하는 나 자신을 보니, 이것도 자격지심이었나 보다.
몇 개월째 경험하면서, 생각보다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남자인 것도 관심 없을뿐더러, 삼삼오오 모여있는 그들과 달리 나 홀로 있는 것에도 관심 없다. 그러고 보면 참 다행이다. 정작 관심 있어야 할 곳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신경을 꺼야 할 곳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말이다. 나 역시 민망해할지 모르는 누군가를 위해 쳐다보지 말아야겠다. 내 일만 잘하면 된다. 쓸데없는 오지랖은 부득이한 사정으로 그리하는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언젠가 아들에게 물었다. “이을아, 넌 아빠가 마중 나가도 부끄럽지 않니?”
아들이 대답한다. “전~혀”
아들이 건강한 정신으로 잘 자라줘서 고마울 뿐이다. 또다시 그 전쟁터 같은 아줌마 대열에 합류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