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다리가 아닌 가슴이 떨릴 때
결혼 후, 휴가 때면 남들 흔히 가는 해외여행 한 번 가보지 못한 채 1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누군가 그러더라. 해외여행은 가슴이 떨릴 때 가야지, 다리가 떨릴 때 가면 안 된다고. 조금이라도 젊을 때 가야지, 나이 들어 다리가 떨려 걷기도 힘든데 여행 가면 함께 한 사람들에게 민폐 끼친다나 어쩐다나. 대부분 ‘먹고 살기 바쁜데 한가하게 해외여행이라니, 그건 나이 들어 시간 되면 가야지’라고 생각한다. 당시엔 ‘맞아’하고 고개 끄덕이며 웃으며 넘겼는데, 사실 내가 그러고 있더라.
회사와 달리 교회 사역이란게 연중에 연차를 낼 수도 없을뿐더러, 많지 않은 사례비를 받으며 한 푼 두 푼 모아야지 해외여행이라니 언감생심 꿈이나 꿨겠는가 말이다. 전임 사역을 그만두니 해외여행에 필요한 두 조건 중 시간은 충족했으나, 문제는 돈이다. 이놈의 돈은 목사라고 유월(逾越)(성경의 유월절을 빗댄 말)하지 않고, 당당히 자본주의의 주인이라며 아우성친다.
난데없이 아내가 여행을 가자고 한다. 국내 여행이야 틈나는 대로 갔으니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국내가 아닌 해외를 가잔다. 마음만 먹고 실행하지 않으면 못 간다며, 질러야 갈 수 있단다. 농담인 줄 알았다. 그런데 항공권과 숙소를 알아봐 달란다. 2박 3일 일정으로 가기로 했다. 신혼여행 이후 12년 만에 아내와 함께하는, 그리고 아들과 함께 하는 첫 해외여행이다. 일단 가까운 나라를 시작으로 점점 먼 나라로 도전하기로 했다. 급하게 항공권을 알아봤다. 3명을 왕복 항공권으로 예약하다 보니 가까운 나라라고 해도 싸진 않았다. 숙소는 생각보다 저렴했다. 현지에서 사용할 돈까지 생각하면 갑작스럽게 지출이 는 셈이다. 하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여행으로 보고, 듣고, 맛보고, 경험한 것으로 나와 아내와 아들이 깨닫는 것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여행경비에 맞먹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이런 것 때문에 돈을 들여서라도 해외여행 하는 게 아니겠는가.
막상 지르고 보니 꿈이 현실이 되었다. 형편 고려하면 못하나, 지르니 하게 된다. 시간 생각하고 돈 생각하여 못했던 것이 지르니 하게 된다. 막상 질러보니, 그동안 왜 그렇게 궁색하게 살았나 싶다. 돈은 쓸 때 가치 있다. 쓰지 않는다면 모을 이유도 없다. 무가치한 곳에 쓰는 돈은 낭비지만, 가치 있는 것이라면 질러서도 하는 게 맞는가 한다.
그래, 질러야 가더라. 지르지 않았다면 가슴이 아닌 다리가 떨릴 때, 아니 다리가 더는 떨리지 않았을 때까지 못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