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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요리책

심적 부담과 고통과 땀방울이 어우러진 추억

by 냉수 한 그릇

교회 사임 후 육아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요리를 시작했다. 자라면서 아버지가 가끔 요리하는 걸 보았고, 때론 어머니 요리보다 맛있었기에 나도 잘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서울에 올라와서 신대원을 졸업하고 자취하면서 볶음밥 등 간단한 요리를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군 복무 시절, 섬이라는 특수한 곳에 있다 보니 병사들이 진급 때마다 돌아가며 행정과 취사를 담당하는 ‘주계병’ 직책을 맡았기에, 나도 일병이 되면서 자연스레 몇 개월간 주계를 맡아 요리할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라면 끓이는 것도 요리라고 쳐준다면야 생전 요리한 거라곤 이것뿐인데, 난데없이 군대에서 요리라니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부대 특성상 경계근무가 주 임무이다 보니. 오전엔 주로 잠을 자고 점심때 일어나서 하루 과업을 시작한다. 그러니 점심과 저녁, 하루 두 끼만 차려내면 되는데 이건 뭐 공휴일도 없고, 나 힘들다고 누가 대신해 주는 경우도 없으니 나 홀로 오롯이 칼질해야만 했다. 일주일 단위로 외부 업체에 반찬거리를 주문해야 했는데, 다행히 선임들이 작성해 놓은 주문 리스트가 있어서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몇 가지 수정하여 주문하면 문제없었다.


놀랍게도 동료 대원들은 밥을 먹는지 삼키는지 알 수 없는 속도로 밥알 한 톨 남기지 않고 그릇을 다 비웠고,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내 입가엔 들킬 수 없는 미소로 가득했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들은 “너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라고 말씀하셨나 보다. 맛없게 만든 음식도 마법의 가루인 ‘미원’을 넣기만 하면 미친 맛으로 변하니, 요리 그거 별거 아니었다. 누가 사놓은 건지 알 수 없는 낡아빠진 요리책에 있는 미트볼을 레시피대로 만들어 내놓으면 그날은 평소 2배 속도로 먹어치우니, 스스로 요리에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했을 만도 하다. 미련하게도 그들은 배고픈 군인이었단 사실을, 시장에 내다 팔면 환불해 달라고 욕먹을 반찬도 고급 레스토랑 음식처럼 먹을 수 있는 군인이었단 사실을 지금껏 난 간과했다. 한 가지 또 생각났다. 다른 주계병이 만든 맛없는 음식을 나도 미친 듯이 맛있게 먹었다는 것을.




군인 아닌 아내는 조미료 맛을 기막히게 알아차린다. 그러니 내 비장의 무기인 조미료를 감히 쓸 수 없게 되었다. 무기를 사용할 수 없다면 몸으로 때워야 하는데, 요리 솜씨 탁월한 장모님의 음식을 맛보며 자란 아내 입맛을 내가 만족시킬 수 있을지 심히 두려웠다. 어쩌겠나, 내가 주방에선 장(長)이니 내가 주는 대로 먹어야지.


집에 있는 요리책과 유튜브 영상을 참고하여 하나씩 음식을 만들었다. 그래도 한두 가지 맛있다는 음식이 있어서 반복해서 만들려면, 그때마다 영상을 참고하는 게 번거로워 아예 나만의 요리책을 만들었다. 스스로 창작한 요리는 아니나, 레시피를 참고한 음식 중 괜찮은 것만 선별하며 만든 나만의 요리책을 보니 마음이 든든하고 뿌듯하다. 이 책을 아들에게 가보로 물려줄까, 하는 재밌는 생각도 해보았다.


내 요리책은, 일하지 않고 집에 있으며 내가 겪었던 심적 부담과 고통과 땀방울이 어우러진 추억이다. 언젠가 주중에 바쁘게 일할 날이 오겠지. 그때 내 요리책을 본다면, 지난날의 가슴 아린 옛 추억에 눈가에 눈물이 고일지도 모른다. 힘들었지만, 소중했던 기억이기도 하다. 생활비 벌러 왕복 2시간 반이 넘는 거리를 출퇴근한 아내를 향한 미안함의 기억들이기 때문이다. 학교 급식이 더 맛있다던 아들과 함께했던 기억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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