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누리는 최소한의 것
목회자로 부르심을 받았다고는 하나, 살아보니 이 말이 하나님이 생계까지 책임져 주신다는 의미는 아닌듯하다. 어떡하든 먹고 사니 문자적인 의미라면 맞는 말이다. 단순히 굶주리지 않을 정도로만 먹고사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부르심에 응해야 하나, 가족이 있는 나로선 먹는 문제만 해결해 준다고 남편과 아빠로서 역할을 다했다고 하기엔 민망하다. 무엇보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목회자의 자녀로 태어난 아들로선, 내가 목회자로 부르심 받았으니 먼저 그 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자는 성경 말씀을 언급하며 먹는 것 외엔 바라지 말라는 말이 쉽게 이해되진 않을 것 아닌가. 또래처럼 해외여행도 가고 싶고, 좋은 차도 타고 싶고(요즘 계속 차 바꾸자고 재촉하는 마당에), 좋은 집에도 살고 싶을 텐데 아빠가 부르심 받은 목사라는 이유로 모든 욕구를 꾹꾹 누르고 살아야 한다면, 스스로 억울하고 화날 만도 하겠다.
생계유지를 위해 목회하는 건 아니나, 분명한 것은 생계문제가 목회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는 건 사실이다. 목회한다는 이유로 가족이 굶어야 한다면, 그래 문자적인 생계유지는 가능하니 다르게 표현해서 가족이 남들이 누리는 최소한의 것조차 누리지 못하고 살아야 한다면, 목회를 계속해야 할지 고민할 법도 하다. 사실 목회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 늘 부교역자로 있었으니, 내가 가진 목회철학으로 한 교회를 담임하여 목회한 적도 없지 않았던가. 성도는 자본주의의 혜택을 철저히 누리고 살아가면서, 목회자만 세상 유혹과 욕심을 버리고 검소하게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차라리 내 가족을 위해 목회를 하지 않을 마음도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을 죽어서 가는 천국이 아니라는 이유로 멸시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좋은 음식도 먹어보고, 좋은 곳도 가봐야 이 모든 것을 우리 인간에게 은혜로 베푸신 하나님을 향한 배려가 아니겠느냔 말이다.
큰맘 먹고 아들 생일선물로 비싼 레고를 사주었더니, 어려운 친구는 이런 것도 살 수 없다며 울고 있으면 속상하다 못해 화날 것 같다. 저 어려운 나라엔 먹지 못해 뼈만 앙상한 친구들이 많다고 하여, 평생 좋은 음식은 먹지 않고 라면만 먹고살 순 없지 않겠는가. 그렇게 따지면 라면도 못 먹는 친구들이 많으니 굶어야 마땅하다. 비만 오면 물이 줄줄 새는 지붕 아래 사는 친구도 있으니, 지금 사는 집도 팔아치우고 산에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냔 말이다. 그래, 내가 말하는 건 최소한의 것이다. 나도 양심이 있다. 나보다 어려운 사람 앞에서 내가 누리는 알량한 자본주의 산물 따위 자랑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내가 언제 분수에 맞지 않는 과소비를 하자고 했던가. 무리하게 대출받아 차를 사자고 했던가. 목동에 잠시 살며 보았던 하이페리온 아파트를 꿈꾸며 매매하자고 했던가. 우리 본향인 저 천국만을 바라보며 이 땅에서의 즐거움은 모두 버리고 살아야 한다고 누군가 말한다면, “당신이나 평생 그렇게 사시오.”라고 말해 주고 싶다. 난 죽어서 가는 천국에서만이 아닌, 주님과 함께라면 그 어디나 하늘나라인 이 땅에서도 최소한의 즐거움은 누리고 살고 싶으니 말이다. 그래, 하나님이 이 세상에 베풀어주신 은혜의 아주 최소치라도 누리고 살고 싶을 뿐이다. 자식 앞에선 목회자가 없다. 자녀에겐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부모만 있을 뿐이다. 내가 목회자라는 이유로 내 자식만 남들 누리는 것조차 누리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파트타임 사역만으론 생계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 정직해지자. 생계가 문제는 아니다. 월 100만 원이 채 안 되는 사례비만으론 남들 다 가는 해외여행도, 호텔도, 레스토랑도 고민하고 고민하며 큰마음먹고 가야 하니 말이다. 남들 다 누리는 자본주의 산물의 최소치마저 고민해야 하니 말이다. 무엇보다 언제까지 아내가 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으나 졸업 전에 신대원에 들어와서 관련한 직종으론 경력이 전혀 없다. 당연히 취업은 불가능하다. 감사하게도 교회를 사임하기 전에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하지만 경력 없는 40대 중반의 남성을 쓰겠다는 곳은 없었다.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사회복지사 업무가 아닌 어르신을 송영하는 운전이 주요 업무였다. 노인 인구가 늘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가진 이의 취업이 유리할 것이란 전망에 취득했건만, 현실은 어림도 없다.
신대원 동역자이며 현재 카페와 목회를 병행하는 친구에게서 여러 기술에 관한 것을 들었다. 목수며 도배며 타일 관련 같은 것이다. 친구는 한마디 덧붙였다.
“내게 찾아오는 사람 10명 중 내 말을 듣고 실제로 실행하는 사람은 1명밖에 되지 않아.”
나도 한마디 덧붙였다.
“그 한 사람이 내가 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