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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수 한 그릇 Aug 07. 2023

놓치기엔 아까운 글

그렇게 첫 번째 책이 나오다

나는 무명의 목사다. 교계에서 인지도 없는, 즉 이름 없는 목사란 뜻이다. 교회 사임 후, 한 달 반 동안 쉬는 날 없이 하루 대여섯 시간을 글쓰기에 매진했다. 글만 쓰면 책이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러나 독서인구가 현저히 줄어드는 현실에서, 특정 종교 분야의 책 한 권을 출판하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는 걸 뒤늦게야 알았다.


내가 쓴 글에 애정과 자부심이 있었다. 원고 탈고 후, 발품 팔아 각 출판사의 리스트를 작성했다. 원고출간제안서를 작성한 뒤, 출판사 이메일로 원고를 투고했다. 매주 두세 곳에 보냈다. 동시에 두세 곳에서 답변이 왔다. 여러 말로 나를 위로하지만, 그것이 ‘거절’이란 걸 모를 리 없다. 한 곳에선 출판사와 저자가 함께 비용을 감당하는 반기획 출판을 제안했다. 이름 없는 저자의 책이 잘 팔리지 않을 위험을 서로 부담하자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러나 내겐 그마저도 낼 형편이 되지 못했다. 되려 나의 위치와 현실을 깨우쳐주어서 감사할 뿐이다.




열댓 곳에 이메일로 원고를 투고한 뒤, 더는 하지 않기로 했다. 나 스스로가 될 놈이라고 생각했다면 포기하지 않고 수십 곳이라도 넣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감을 잃었다. 내 글을 이대로 보내기엔 아쉬워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다. 그리고 책의 일부 내용을 영상으로 만들었다. ‘영상’은 성역이라 생각하여 한 번도 시도할 생각을 못 했는데 하게 된다. 이게 뭐라고 하다 보니 또 실력이 는다. 


완전히 마음을 내려놓았다. 마지막으로 원고를 투고한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던 어느 날 오전에, 한 출판사에서 전화가 왔다. 비록 ‘무명’이나, 놓치기엔 아까운 글이라고 했다. 흥미로워서 읽다 보니 다 읽게 되었다고 한다.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기획출판을 제안받았다. 통화하면서 눈물 흘린 게 언제인가 싶다. ‘이름’이란 브랜드 파워가 아닌, 오롯이 글로만 승부를 봐야 하는 냉혹한 출판의 현실 앞에, 누군가 내 글을 인정해 준 것에 감격했다.


예수님은 작은 자에게 다가가신다. 그 작은 자는 예수님이 보인 관심과 사랑에 얼마나 큰 감격과 위로를 받았을까? 나는 오늘 성경이 말하는 그 ‘작은 자’를 삶으로 경험했다. 출판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여전히 소소한 나의 일상에서 주님과 함께 그 ‘작은 자’의 은혜를 누리고 싶다.


냉수 한 그릇:누구도 시원하게 답해 주지 못한 질문에 답하다 | 김 혁 지음 | 아가페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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