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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수 한 그릇 Aug 21. 2023

가정에선 아빠, 엄마라고!

난 성도에게 목사다. 부모에겐 아들이고, 장인·장모에겐 사위이며, 매형에겐 처남이요, 처형에겐 제부요, 처제에겐 형부이다. 같은 원리라면 가정에서 아내에겐 남편이요, 아들에겐 아빠다. 성도에겐 목사로 행동하지만, 부모에겐 아들로 처신한다. 신앙 없는 처형, 처제에게 목사랍시고 무게(?)잡지 않는다. 만약 그랬다면, 재수 없다며 날 등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들이 정말 그럴 것이라 믿지 않지만 말이다. 목사이기에, 목사로서 품위는 유지하되 목사처럼 행동하진 않는다.


난 성도 누구에게 아내를 소개하거나 언급하면서, ‘사모’란 호칭을 쓰지 않는다. 아내를 가리키며 “제 사모예요.”라고 하지 않는다. 당당히 아내라고 소개한다. 아내가 어찌어찌했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아내가 성도에게 날 언급하면서, ‘목사’로 호칭하지 않는다. 그저 남편이 어찌어찌했다고 말한다. 물론 상대 관점에서 호칭을 불러줄 수도 있겠다. 성도에게 난 목사이니, 아내가 날 언급하며 “목사님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난 어색하고 불편하다. 목회보다 가정이 우선인 난, 아내에겐 남편이란 호칭만 듣고 싶을 뿐이다. 사실 같은 논리라면, 내 아들을 소개할 때 상대 관점에서 “제 아드님은…”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말도 안 된다.


때에 따라 담임목사나 장로 자녀에게, “아빠 어디 계셔?”라는 식으로 질문하기도 한다. 자녀에게 담임목사나 장로는 아빠이지 직분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로선, 그들 자녀가 내가 찾는 이를 목사나 장로가 아닌 아빠로 대하길 원하는 바람으로 은연중 내 마음을 질문에 녹여내었는지도 모르겠다. 공식적인 자리에선 호칭을 주의하여 사용한다. 반대로 사적인 자리에선 상대에 맞는 호칭을 쓰려고 한다. 




하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도 공적인 호칭을 사용하는 이들이 있다. 내게 “아빠가…”라고 하지 않고 “장로님이(혹은 목사님이)…”라고 하는 식이다. 아빠라고 호칭하면 목사나 장로의 권위가 실추될 거란 염려에서 일까? 난 아들이 성도에게 날 언급할 때도 “아빠”로 부르라고 가르칠 것이다. 난 아들에게 아빠가 되고 싶지 목사가 되고 싶진 않다. 아니면 내 관점을 배려해서일까? 내 관점을 배려한 것이라면 엄마를 말할 땐 “집사님이(혹은 권사님이)…”라고 하지 않고 “엄마가…”라고 말하는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역시 앞에서 말한 가부장제의 폐단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렇게 배워서일까. 내색하지 않으나 속으론 상당히 불편하다. 가족을 소개할 때 공적 호칭을 사용하는 건 매우 어색한 일이다. 어쩌면 교회가 공적인 장소라고 생각했기에 공적 호칭을 사용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교회 밖에서는 아빠로 부를 것인가? 그건 아닐 테고, 그게 아니라면 목사인 나와는 공적 관계라고 생각한 건가? 그런 거라면 목사와 성도는 사무적인 관계만 맺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무엇을 생각하더라도 가족을 공적 호칭으로 사용하는 건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심지어 지인(이나 친구)끼리 통화하며, “우리 목사님이 어찌어찌했는데…”라는 식으로 말하는 이도 있다. 그런다고 남편인 목사의 권위가 세워지는 게 아니다. 그런 이는 자녀에게까지 아빠를 목사로 대하도록 부추길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게 배운 자녀는 자기 자녀 역시 그렇게 가르칠 것이다. 상대에게 제삼자를 언급하는 호칭이야 2인칭 관점에서 사용할 수 있겠으나, 내 가족을 말할 때는 1인칭 관점에서 호칭하는 게 자연스럽다.


가정은 하나님이 만드신 최초 공동체이다. 교회가 생기기 전 가정이 먼저 존재했다. 따라서 가정이 무너지면 신앙 역시 위태로워진다. 가정이 화목할 때 건강한 신앙으로 성숙할 수 있다. 그 시작은 나와 배우자를 무엇으로 부르는가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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