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가정에서 남편이고 아빠이지, 목사가 아니다. 교회에선 목사일지 모르나, 가정에선 철저히 남편과 아빠로 역할하려고 한다. 목사라는 이유로 집에서도 개인기도 시간과 성경 읽는 시간을 마음대로 사용해선 안 된다. 그래야 한다면 가족에게 양해를 구해야 마땅하다. 자녀가 있다면, 자녀와 실컷 놀아줘야 한다.
난 급하게 처리해야 할 때를 제외하면, 아들이 잠을 잔 이후 시간을 활용하여 개인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경건 활동이란 명분으로 가족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아내와 대화시간을 단축하거나 자녀와 놀아주지 않는 게 당연할 수 없다. 집에서도 목사로 산다면, 목사 신분은 유지할 수 있으나 남편과 아빠라는 이름은 그들 기억 속에서 지워질 것이다. 성경 읽고 기도한다는 이유로 놀아주지 않았다는 것을 자녀가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면 대단한 착각이다. 놀아달라고 떼쓰는 자녀에게 성경 읽으니 방해하지 말라며 짜증 낸다면, 이때 받는 자녀의 상처는 좀처럼 아물기 힘들 것이다.
한편 목사라는 이유로 나만 주의 종이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나만 거룩하고, 나만 영감 있고, 나만 영적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때론 특정 사역 문제의 결정을 놓고 함께 고민하고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설교를 같이 고민하는 것도 좋다. 아내의 섬세함은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놓친 부분을 발견하게 해 준다.
하나님과 관계가 좋다는 것은 아내와, 그리고 자녀와도 관계가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편과 아빠 역할은 나 외에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무너진 가정은 그 누구도 책임질 수 없고 책임지지도 않는다. 그러니 가정보다 목회와 교회 일이 우선이라며 헌신을 강요하는 교회의 잘못된 가르침을 거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