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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냉수 한 그릇 Dec 11. 2023

에피쿠로스 명제에서 빠진 것

선악과, 여전히 악이 존재하는 이유

목사지만, 천국에 가게 되면 여전히 하나님께 묻고 싶은 게 있다. 구약성서인 창세기 3장에 나오는 선악과 사건에 관한 것이다. 동산에 있는 모든 열매를 먹을 수 있으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하셨다.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다. 황당했다. '먹으면 죽는 열매를 뭐 하러 만드셨을까?' 생각했다. 심지어 하나님은 선악과 나무를 동산 중앙에 두셨다. 동산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이다. 초신자 시절, 이건 먹고 죽으라고 만드신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에피쿠로스의 유명한 명제가 있다. "신은 악을 막을 의지는 있지만, 능력이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전능하지 않은 것이다. 악을 막을 능력은 있는데 의지가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는 악한 것이다. 악을 막을 능력도 있고 의사도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도대체 이 세상의 악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악을 막을 능력도, 의지도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왜 그를 신이라 불러야 하는가?"이다. 꽤 날카롭다. 그 어느 구절에서도 반박할 만한 틈을 찾기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목사가 되면서, 이 명제에서 한 가지 중요한 요소가 빠져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사랑'이다. 여기엔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빠졌기에, 이것은 맞는 말인 듯 보이나 사실 틀린 말이다.     


하나님의 그 사랑은, 선악과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신 건,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첫 번째 금지명령이다. '명령'의 사전적 의미는 "윗사람이나 상위 조직이, 아랫사람이나 하위 조직에게 무엇을 하게 하는 것"이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하는 건 '부탁'이라고 하지 '명령'이라고 표현하진 않는다. 즉, 하나님의 금지명령으로 하나님은 창조주요, 우린 피조물이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봤을 법한 바로 '자유의지'라는 속성이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건 내 마음이라는 것이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순간, 인간에겐 먹든지 말든지 할 수 있는 선택의 기회가 자연스레 주어지게 된다. 기독교에서 흔히 말하는 사탄 역시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 인간을 어찌할 수 없는 존재인데, 하나님이 유독 인간만은 당신 명령에 순종할 수도, 감히 불순종할 수도 있는 존재로 만드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을 성경은 '죄'라고 말한다.    


 



난 이 세상에 정의와 공의가 가득하길 소망한다. 악과 불의가 사라질 날을 꿈꾼다. 하지만 절대 올 수 없다는 것이 진실이다. 하나님은 공평하시나 세상은 불공평하고, 하나님은 선하시나 세상은 악하기 때문이다. 양심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보다 윗사람에게 지문이 닳도록 손을 비비는 사람이 훨씬 성공하기 쉽다. 물론 하나님께서 악을 만드신 건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악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도, 불순종할 수도 있는 인간들의 자유로운 선택으로 발생한 것들이다. 내 실수와 잘못으로 고난을 겪기도 하나, 타인의 실수와 잘못으로 당하는 고난 역시 부지기수다. 신호를 지키며 횡단보도를 건넜으나, 음주운전으로 달려오는 차량에 허무하게 귀한 목숨을 잃는 것 역시 하나님이 아닌 인간의 죄 때문이다. 악이 없어지려면, 인간을 사랑하여 우리에게만 허락하신 이 놀라운 특권이자 사랑의 징표인 자유의지를 하나님 스스로 거두어가셔야만 한다.      


말 안 듣는 초등학교 4학년 아들을 키우며,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간다. 때론 강제로 말 듣게끔 하고 싶으나, 언젠가 아들이 아빠인 내 마음을 알아주길, 그래서 스스로 돌이켜 내 말을 자발적으로 들어주길 바란다. 어릴 적, "말 좀 들어!"라던 부모님의 잔소리가 그토록 듣기 싫었는데, 어느새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한 가정의 가장이 되고, 한 아내의 남편이 되고, 그리고 한 아들의 아빠가 되어 보니,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불순종할 수도 있는 자유의지를 스스로 포기하며 어떡하든 순종하고 싶은 마음만 내게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아들의 모습에 내 어린 시절을 투영하면서, '그래 너도 커서 아빠가 되면, 내 마음을 알겠지' 생각한다.      


하나님 마음도 내 마음 같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할 때마다 마음 아파하시지만, 끝내 자유의지를 거두지 않으시며 자발적으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까지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한다. 비록 지금도 곳곳에서 악이 자행되나, 주님 오시는 그날 선악 간에 우리의 모든 행위를 심판하실 하나님은 여전히 내게 선하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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