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롭게 읽은 소설이 있다. '알랭드 보통'이 쓴 [우리는 사랑일까?]이다. 장르는 소설이나, 남녀의 사랑에 관한 심리묘사를 꽤 냉철하게 분석해 놓은 걸 보면 연애심리분석에 가까운 책처럼 보인다.
힘이란 단어는 사전적으로 행위 능력을 의미한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는 권력이란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영향을 미치거나, 사람이나 사물에게 작용을 가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중략) 하지만 사랑에서는 권력이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능력으로 간주된다.
-알랭드 보통, [우리는 사랑일까?] 중에서-
기막힌 분석이다. 한 마디로, 남녀관계에서는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라는 것이다. 둘 중에 더 영화를 보고 싶거나, 더 여행을 가고 싶거나, 더 통화를 하고 싶은 쪽이 상대를 더 사랑한다는 의미다. 덜 사랑하는 쪽은 뭘 하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굳이 영화 보지 않아도, 통화 길게 하지 않아도 개의치 않는다. 상대가 날 떠날까 봐, 사랑이 식을까 봐 조바심 내는 쪽은 늘 더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렇다. 사랑에 있어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능력이고, 늘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일 수밖에 없는 듯하다.
이런 논리라면, 문득 하나님이 인간인 나보다 더 약자일 거란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에 나오는 인간과 하나님의 모습에서 조바심을 내는 쪽은 늘 하나님이란 사실을 종종 발견한다. 구약성서인 호세아서 6장 1절에서는,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라고 말한다. 언제든 죄짓는 쪽은 인간이고, 돌아올 때 용서해 주시고 싸매어 주시는 쪽은 하나님이시다. 아무리 보아도 죄짓는 인간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이 다급해하시고 조바심 내신다. 어떡하든 인간을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시고, 돌아오게 하시는 하나님의 열심보단, 아무것도 하지 않는 우리 인간에게 더 권력이 있어 보인다. 같은 구약성서인 이사야서 1장 18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라고 말한다. 먼저 변론을 요청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매번 용서받고도 또 죄를 짓는 인간이 아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늘 인간 때문에 애타고, 가슴 아파하는 분으로 묘사되어 있다. 내가 볼 때 하나님은, 온 세상을 창조하신 만왕의 왕이시나 인간 앞에서는 권력을 내려놓으신 참된 권력자요, 한없이 약자이신 참된 강자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