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희 기자의 프랑스 푸드투어_ 라따뚜이
프랑스 가정요리 중 가장 좋아하는 요리는 라따뚜이다. 한 입 먹으면 에너지가 넘치는 프랑스 남부의 강렬한 태양이 느껴진다. 게다가 어느 음식에든 잘 어울려 더욱 매력적이다.
얼마 전 영화 ‘엘리제궁의 요리사’를 봤다. 대단한 스토리가 있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프랑스 요리를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영화는 프랑스 가정요리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엘리제궁(프랑스 대통령관저)에 들어간 라보리 셰프가 대통령에게 격식 있는 요리보다 할머니의 손맛이 느껴지는 따뜻한 가정요리를 대접하는 내용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라따뚜이가 떠올랐다. 프랑스 음식 중 좋아하는 음식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라따뚜이를 선택할 것이다. 레스토랑에서 즐기는 화려한 음식도 좋지만 프랑스산 채소, 특히 가지를 듬뿍 넣고 뭉근하게 끓여낸 프랑스 가정요리인 라따뚜이를 가장 좋아한다.
라따뚜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알려진 때는 1980년대부터다. 라따뚜이는 농부가 밭에서 채소를 따와 마구썰기해서 올리브오일과 허브를 넣어 함께 끓여낸 채소 스튜로 프로방스-코트다쥐르 지방 음식이다. 라따뚜이가 니스 지방 음식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지중해 음식이다.
라따뚜이의 형태가 등장한 시기는 1980년대보다 앞선 1877년, 한 디너파티에서다. 당시는 이름도 라따뚜이가 아니었고, 고기 스튜의 새로운 형태로 등장했다. 1930년대까지 특별한 이름을 갖지 못한 채, ‘파프리카와 가지, 토마토와 주키니 호박을 넣은 스튜’로 불렸다. 그렇기에 라따뚜이에는 정확한 레시피가 없다. 지역에 따라, 가정에 따라 다양한 레시피가 가능한 것이다.
라따뚜이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애니메이션 ‘라따뚜이’를 통해 알려졌다. 그러나 영화 속 라따뚜이는 프랑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즐기는 라따뚜이와는 조금 다르다. 영화 속 라따뚜이는 오븐에 구워 크런키한 맛이 더욱 강조된 라따뚜이의 고급 버전인 콩피 비얄디(Confit byaldi)에 더욱 가깝다.
프랑스에서는 라따뚜이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먹는다. 라따뚜이만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하거나 작은 볼에 담아내어 빵의 곁들임 음식으로 먹기도 한다. 쇠고기나 해산물 요리와도 잘 어울려 접시 아래 라따뚜이를 깔고 위에 고기를 얹기도 하는 등 본식에서도 자주 보이는 음식이다. 한번은 프랑스에서 쇠고기 요리를 추천받아 먹은 적이 있었는데, 둥글납작한 냄비 아래에 마구썰기된 당근과 주키니 호박이 오븐에 구워져 나왔다. 쇠고기 육수와 어우러진 채소의 맛은 달콤했다.
만드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냉장고에 있는 채소(토마토, 양파, 주키니 호박, 가지, 파프리카)를 올리브 오일과 허브 등의 향신료를 넣고 볶다가 뭉근하게 끓인다. 손님에게 대접하거나 본식 요리 중 한 가지로 선보일 때는 라따뚜이 애니메이션처럼 고급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신선하고 부드러운 맛을 좋아한다면 스튜 형식으로 끓이고, 바삭함을 좋아하면 오븐에 구워내 채소의 크런키함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요리할 때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있다. 원재료 고유의 맛을 즐기는 프랑스 사람들은 라따뚜이 재료의 맛이 섞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팬을 두 개를 갖춘다. 채소를 한 가지씩 볶아내어 재료의 맛을 한껏 끌어올린 후, 다른 팬에 담아 끓이거나 오븐에 구워낸다.
프랑스 음식은 버터를 많이 사용하다보니, 그다지 한국 사람들의 입에 맞는 음식은 아니다. 그러나 라따뚜이는 무엇을 곁들여 먹느냐에 따라 그 맛도 달라진다. 라따뚜이에 구운 마늘과 양파, 토마토를 듬뿍 넣으면 한국 사람들 입맛에도 적당할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무릎을 탁 쳤던 라따뚜이 비유가 있다. 라따뚜이는 한국의 김치찌개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완전히 다른 음식이기는 하지만 각 나라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이미지는 이보다 비슷할 수는 없다. 넣는 재료에 따라 또 다른 맛을 즐길 수 있으며, 딱히 먹을 음식이 없을 때 가정에서 손쉽게 끓여낸다. 가정마다 레시피도 다르다. 라따뚜이도 그렇다.
2016년 10월 1일자 더바이어 266호에 게재 됐던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