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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바이어 Jun 12. 2019

스토리칼럼_슬픔이 없는 15초


아득한 고층 아파트 위


태양이 가슴을 쥐어뜯으며


낮달 옆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치욕에 관한 한 세상은 멸망한 지 오래다


가끔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난다


가능한 모든 변명들을 대면서


길들이 사방에서 휘고 있다


그림자 거뭇한 길가에 쌓이는 침묵


거기서 초 단위로 조용히 늙고 싶다


늙어가는 모든 존재는 비가 샌다


비가 새는 모든 늙은 존재들이


새 지붕을 얹듯 사랑을 꿈꾼다


누구나 잘 안다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태양이 온 힘을 다해 빛을 쥐어짜내는 오후


과거가 뒷걸음질 치다 아파트 난간 아래로


떨어진다 미래도 곧이어 그 뒤를 따른다


현재는 다만 꽃의 나날 꽃의 나날은


꽃이 피고 지는 시간이어서 슬프다


고양이가 꽃잎을 냠냠 뜯어먹고 있다


여자가 카모밀 차를 홀짝거리고 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듯도 하다




나는 길 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다


남자가 울면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궁극적으로 넘어질 운명의 인간이다


현기증이 만발하는 머릿속 꿈 동산


이제 막 슬픔 없이 십오 초 정도가 지났다


어디로든 발걸음을 옮겨야 하겠으나


어디로든 끝간에는 사라지는 길이다






* 6월을 맞이하며 심보선의 詩 ‘슬픔이 없는 15초’를 스토리칼럼의 선물로 전합니다. 행간은 임의로 편재했음을 밝힙니다.


더바이어 임동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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