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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바이어 Feb 12. 2018

도대체 왜 내 맘대로 먹지 못하게 하는 거야?

김선희 기자의 프랑스 푸드 투어_ 장인정신

‘고집스럽게 만들어진 요리 한 접시’ 같은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냥 요리가 아니다. 미슐랭 별 3개 레스토랑에서 나올 듯한 그런 요리다. 별 3 개를 아낌없이 주고도 1개 더 주고 싶던 레스토랑이 내게도 있었기 때문에 때로는 사람에게서 그 맛을 느끼곤 한다. 물론 아주 희귀한 일이지만 말이다.  

파리지앵들은 맛을 즐길 뿐, 많이 먹지는 않는다


프랑스의 화려한 요리는 누구나 동경한다. 프랑스에 가기 전에는 나 역시 그랬다. 그러나 우리가 늘 한정식을 즐기지 않는 것처럼 그들도 늘 콩피(Confit, 오리 다리 등을 고기가 거의 녹을 때까지 조리해 그 과정에서 흘러나오는 기름에 서서히 익힌 요리)를 먹거나 시금치를 곁들인 그릴에 구운 연어나 당근과 오렌지 소스로 맛을 낸 스테이크 따위를 먹지 않는다. 그들은 라따뚜이를 먹거나 스파게티, 아니면 샐러드를 먹는다. 파리지앵들은 저녁식사로 새끼손가락 한마디만한 치즈 한 조각만 먹거나 굶기도 한다. 내가 만난 모든 파리지앵들은 맛은 즐기지만 결코 많이 먹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나 역시 고급 음식을 그다지 즐기지 못하고 고작 먹어봐야 한 달에 한 번 정도 스테이크를 즐긴 정도였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파리를 방문했다. 당연히 좋은 음식을 대접하기 위해 고급 레스토랑을 찾았다. 그날 아주 고집스러운 서버를 만났다. 식당에서 나눈 대화다.


“양갈비와 생선 스튜, 그리고 시드르 주세요.”
“더 필요한 건 없으세요?”
“네. 양갈비는 미디움레어에서 좀더 웰던에 가깝게 해주세요.”
“노, 안 됩니다.”


고객의 주문에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노” 소리가 나왔으니 내가 놀랄 수밖에 없다. 그는 “웰던으로 먹으면 맛이 없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나는 다시 말했다.


“동행인이 양갈비를 먹을 건데, 붉은 기가 있으면 먹지 못해요. 웰던에 가깝게 해주세요.”
“안 돼요. 고기가 퍽퍽해지고, 맛이 없어져요.”
“근데 먹지 못한다니까요.”
“한 번 먹어봐요. 아주 맛있어요. 원래는 레어여야 하는데, 미디움레어로 해드릴게요.”
“.....”
“레어로 먹어야 맛있다니까요. 레어로 먹어야 해요.”


파리에서의 경험상 이런 고집이 나오기 시작하면 돌이키기 힘들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기 전에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물론, 단호한 표정으로 거절을 하는 경우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삐쭉이며 돌아가겠지만 나는 그렇게 단호한 인간도 아니다.
“알았어요. 그럼 미디움레어로 해줘요.”


서버가 엄지손가락을 척 올렸다. 그는 계속 우리 테이블을 신경 쓰며 미디움레어로 가져온 양갈비 맛이 어떠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맛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자기가 그렇게 권했기 때문에 맛있게 먹는 것이라며, 또 한 번 미디움레어와 레어의 차이를 설명했다. 



“맛이 없는 음식을 내 줄 수는 없다”


맛이 없는 걸 서빙할 수는 없다던 그의 말에 나는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왜 이 나라는 내가 원하는 음식을 먹지 못하게 하는 거지? 라는 생각과 서버가 장인 정신으로 일한다는 생각이었다.


스타벅스와 같은 미국 대형 체인을 제외한 파리의 카페에는 ‘아이스커피’가 없다. 종종 그 사실을 모르는 한국인이나 일본인이 아이스커피를 주문하는 경우가 있는데 어떤 바리스타는 ‘커피는 향을 즐겨야 하는데, 차갑게 먹다니, 커피의 맛을 모르는 당신에게는 커피가 아까워’라는 눈빛을 쏘곤 했다. 커피 한 잔에도 장인정신이 스며드는데, 셰프의 요리라면 오죽할까. 그리고 이러한 장인정신에 대한 가치는 고스란히 ‘고가 금액’으로 환산되며, 프랑스인들은 그 금액을 기꺼이 지불한다.


식품은 아니지만 또 다른 장인정신 이야기를 해보자면, ‘막셰 드 노엘(Marche de noël, 크리스마스 마켓)’에서의 일이다. 나는 기념품을 사는 타입은 아닌데, 굳이 기념하고 싶은 곳에 갔다면 ‘북마크’를 산다. 샹젤리제에서 막셰 드 노엘을 즐기던 내게 북마크가 눈에 들어왔다. 나무 판 위에 드릴로 나뭇잎 모양의 북마크를 만들고 있었다. 한참 동안 그 작업 광경을 지켜보다가 금액을 물었다. ‘135유로’였다. 너무 비싸다고 대답했더니 그는 본인이 직접 만든 거라며 어떻게 만드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사기 싫으면 사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갖고 싶은 마음과 부담스런 마음이 교차되면서 한참 동안 쳐다보고 있었더니 구매하는 프랑스인들이 간간히 있었다. 그들은 ‘가치에 돈을 지불하는 일’을 꺼리지 않는다.


내가 먹었던 양갈비는 한 접시에 40유로였다. 미슐랭 쓰리스타 레스토랑 요리는 아니어도 나 역시도 그 요리에 그 금액을 기꺼이 지불할 수 있었다. 일하는 사람이 ‘스스로 가치를 부여할’ 가치 있는 상품이, 그 가치에 대한 금액을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소비자들이 잘 어우러지면 ‘셰프의 고집=장인정신’이 된다. 



2016년 5월 15일자 더바이어 257호에 게재 됐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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